라이프 에디터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가을은 참 예쁘다’. 우리 동네 가을은 정말 예쁘다. 건축한 지 30년이 가까워진 아파트 단지 곳곳에선 6~7층 높이까지 뻗쳐오른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해 감나무, 모과나무, 무화과 나무가 계절의 정취를 더한다. ‘동네 예찬’을 하려면 끝도 없다. 강남과 강북을 잇는 광나루역 옆 초역세권,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아차산과 한강, 웬만큼 한다는 초중고 학군, 널찍한 도로, 다양한 문화시설. 서울 광진구 광장동은 나에겐 그런 동네다. 이 가을, 온 동네가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어느날 아침 아파트 단지에 불그죽죽한 펼침막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청소년수련관에 쓰레기장이 웬말이냐!’ ‘서울시 최적 주거지역 구청장이 파괴할 건가?’ ‘청소년 죽이는 구청장은 물러가라.’ 단지 건너편 체육공원 부지 지하에 45m×20m 규모의 폐기물처리장을 짓겠다는 구청의 발표에 주민들은 뿔이 났다. “분진과 미세먼지가 날리고, 악취가 진동하고, 환경호르몬이 배출될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급기야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주변 아파트 단지와 연대해 시위도 벌인다. 인터폰으로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안내방송도 잦아졌다. 국회의원, 시의원에게 전화 걸기,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항의전화 걸기 등 투쟁 지침도 하달됐다. 대책위에서 폐기물처리장 반대 서명 용지를 들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서명을 거부했다. 꼭 필요한 혐오시설이 집 앞에 들어선다는 이유로 막는 건 지역이기주의, 님비이기 때문에. 그런 품위있는 설명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위선이다. 동네 공인중개사의 진단이 정곡을 찔렀다. “혐오시설이 들어온다는데도 여기 주민들은 그렇게 필사적이지 않아요. 대부분 세입자들이 살기 때문이죠.” 집주인과 세입자, 서로 다른 처지에서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며 나름의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내 선택이 딱 그렇다.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 주거환경 악화를 우려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이해는 전혀 다르다. 주인들은 여기에 더해 집값 하락을 걱정한다. 재건축 추진을 결의하고, 강남발 재건축 바람까지 불면서 모처럼 자산가치가 오를 것을 기대했던 집주인들 처지에서 폐기물처리장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나와 같은 다수의 세입자는 좀 ‘앙큼한 계산법’을 동원한다. 높은 월세와 집값을 고려할 때,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는 게 절대 악이 아니다. 혐오시설이 들어서 집값, 전셋값이 떨어지면 되레 이득이다. 한때 마당 딸린 단독주택 주인이었지만, 성급히 팔아치워 무주택 세입자가 된 나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다. 살까 말까 고민을 거듭하는 몇달 사이, 집값은 수천만원 더 뛰었다. 대다수 공인중개사들은 나를 부추긴다. “더 오를 거예요. 지금이라도 사는 게 좋아요. 나중에 후회 말고 사세요.” 마음은 살랑이고, 고뇌가 몰려온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중개사를 만난 뒤 평화를 찾았다.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텐데, 왜 지금 사려고 해요. 기다려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폐기물처리장 반대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하지만 나는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길 바란다. ‘님비가 후지기 때문’이 아니라,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 들썩이는 집값 앞에서 고뇌하며 섣불리 결론 내지 못하는 이 땅의 많은 세입자들도 이런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게다. 오늘의 머뭇거림을 뒷날 땅을 치며 후회할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웃음지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수십년 경험을 통해 정부도, 부동산전문가도, 중개사도 그리 믿을 게 못 된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냥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skshin@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뛰는 집값, 앙큼한 셈법 / 신승근 |
라이프 에디터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가을은 참 예쁘다’. 우리 동네 가을은 정말 예쁘다. 건축한 지 30년이 가까워진 아파트 단지 곳곳에선 6~7층 높이까지 뻗쳐오른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해 감나무, 모과나무, 무화과 나무가 계절의 정취를 더한다. ‘동네 예찬’을 하려면 끝도 없다. 강남과 강북을 잇는 광나루역 옆 초역세권,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아차산과 한강, 웬만큼 한다는 초중고 학군, 널찍한 도로, 다양한 문화시설. 서울 광진구 광장동은 나에겐 그런 동네다. 이 가을, 온 동네가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어느날 아침 아파트 단지에 불그죽죽한 펼침막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청소년수련관에 쓰레기장이 웬말이냐!’ ‘서울시 최적 주거지역 구청장이 파괴할 건가?’ ‘청소년 죽이는 구청장은 물러가라.’ 단지 건너편 체육공원 부지 지하에 45m×20m 규모의 폐기물처리장을 짓겠다는 구청의 발표에 주민들은 뿔이 났다. “분진과 미세먼지가 날리고, 악취가 진동하고, 환경호르몬이 배출될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급기야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주변 아파트 단지와 연대해 시위도 벌인다. 인터폰으로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안내방송도 잦아졌다. 국회의원, 시의원에게 전화 걸기,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항의전화 걸기 등 투쟁 지침도 하달됐다. 대책위에서 폐기물처리장 반대 서명 용지를 들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서명을 거부했다. 꼭 필요한 혐오시설이 집 앞에 들어선다는 이유로 막는 건 지역이기주의, 님비이기 때문에. 그런 품위있는 설명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위선이다. 동네 공인중개사의 진단이 정곡을 찔렀다. “혐오시설이 들어온다는데도 여기 주민들은 그렇게 필사적이지 않아요. 대부분 세입자들이 살기 때문이죠.” 집주인과 세입자, 서로 다른 처지에서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며 나름의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내 선택이 딱 그렇다.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 주거환경 악화를 우려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이해는 전혀 다르다. 주인들은 여기에 더해 집값 하락을 걱정한다. 재건축 추진을 결의하고, 강남발 재건축 바람까지 불면서 모처럼 자산가치가 오를 것을 기대했던 집주인들 처지에서 폐기물처리장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나와 같은 다수의 세입자는 좀 ‘앙큼한 계산법’을 동원한다. 높은 월세와 집값을 고려할 때,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는 게 절대 악이 아니다. 혐오시설이 들어서 집값, 전셋값이 떨어지면 되레 이득이다. 한때 마당 딸린 단독주택 주인이었지만, 성급히 팔아치워 무주택 세입자가 된 나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다. 살까 말까 고민을 거듭하는 몇달 사이, 집값은 수천만원 더 뛰었다. 대다수 공인중개사들은 나를 부추긴다. “더 오를 거예요. 지금이라도 사는 게 좋아요. 나중에 후회 말고 사세요.” 마음은 살랑이고, 고뇌가 몰려온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중개사를 만난 뒤 평화를 찾았다.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텐데, 왜 지금 사려고 해요. 기다려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폐기물처리장 반대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하지만 나는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길 바란다. ‘님비가 후지기 때문’이 아니라,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 들썩이는 집값 앞에서 고뇌하며 섣불리 결론 내지 못하는 이 땅의 많은 세입자들도 이런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게다. 오늘의 머뭇거림을 뒷날 땅을 치며 후회할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웃음지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수십년 경험을 통해 정부도, 부동산전문가도, 중개사도 그리 믿을 게 못 된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냥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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