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최순실씨는 ‘회장님’으로 불렸다. 최 회장님도 아닌 그냥 회장님이다. 재벌 회장들이 그리 불린다. 그러고 보니 진짜 재벌 회장님 같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렸다. 스포츠, 부동산, 커피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더니, 대통령 옷을 제조해 청와대에 독점 납품하는 의류업에까지 진출했음이 밝혀졌다. 해외로도 진출해 독일에서는 비덱스포츠 등 회사를 14개나 세웠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규모는 작아도 수익률이 높으니 삼성, 현대의 웬만한 계열사 부럽지 않다. ‘순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는 ㈜청와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차명으로 은닉해놓은 지분이 많으니 회장님이 지배주주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고위직 공무원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청와대를 수익모델로 삼았다”고 표현했다. 요즘 드러나는 걸 보면 과장만은 아니다. ㈜청와대는 이건희 회장도 정몽구 회장도 가져보지 못한 계열사다. 그러니 다른 회장님들은 다 허깨비다. 진짜 회장님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몇백억원씩 상납했다. 그렇게 해서 차린 계열사가 ㈜미르고 ㈜케이스포츠다. 회장님 위의 회장님이고 ‘왕중왕’이다. 그런 회장님이 청와대 안종범 수석을 부르는 호칭이 ‘안 선생’이다. 기분 좋으면 ‘안 선생님’이다. 회장님이 그리 부르니 주변 사람들도 쉬이 보고 그리 불렀다. 어떤 이는 7월11일 ‘안종범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이의 휴대전화에는 아예 ‘안 선생’으로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취재 과정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거다. 왜 그리 불렀을까? 나이가 두어살 아래이니 경로사상이 발동한 건 아닐 게다. 아마도 수석이란 명칭이 껄끄러웠지 싶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수석님’이라고 부르며 사적인 심부름을 시킨다면 회장님인들 맘이 편하겠나. 더군다나 수석이라는 말에는 우두머리란 의미가 담겨 있다.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된 명칭이다. 하지만 회장님이 보기에는 그저 계열사의 한 직원일 뿐이다. 그렇다고 ‘안 전무’나 ‘안 상무’로 부르기에는 남들 눈총이 따갑다. 그래서 내린 답이 ‘안 선생’이다. 안종범 수석은 국감에 나와서 회장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지면의 1면을 보시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겨레>는 안 수석의 거짓말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낼 것이다. 안 수석도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겨레>가 취재한 바로는 ‘안 선생’은 회장님의 뜻을 성심성의껏 받드는 충직한 직원이었다. 누구를 만나라면 만나고 어디를 가라면 갔다. 심지어 점심 약속을 두 탕 뛰면서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회장님의 지시사항이 우선이니 경제수석에서 정책조정수석으로 이어지는 청와대의 공직은 뒷전이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안 수석은 존재감이 없단다. 경제부처의 국장, 과장들이 대면 보고를 가면 큰 그림은 그려주지 않고 조그만 트집을 잡아서 혼내기만 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무능하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서 무릎을 친다. “아! 최순실 심부름 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챙기지도 공부하지도 못했구나.” 그사이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됐다. 바다에서는 한진해운이 가라앉고, 땅에서는 부동산 값이 치솟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거리를 헤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가 공무원은 ‘투잡’이 금지돼 있다. 정신을 딴 데 팔면 나랏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중히 권고드린다. 하나만 하시라. 청와대 수석이 주업인지 부업인지는 모르겠지만…. kyummy@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안종범 선생’이라 불린 경제수석 / 김의겸 |
선임기자 최순실씨는 ‘회장님’으로 불렸다. 최 회장님도 아닌 그냥 회장님이다. 재벌 회장들이 그리 불린다. 그러고 보니 진짜 재벌 회장님 같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렸다. 스포츠, 부동산, 커피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더니, 대통령 옷을 제조해 청와대에 독점 납품하는 의류업에까지 진출했음이 밝혀졌다. 해외로도 진출해 독일에서는 비덱스포츠 등 회사를 14개나 세웠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규모는 작아도 수익률이 높으니 삼성, 현대의 웬만한 계열사 부럽지 않다. ‘순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는 ㈜청와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차명으로 은닉해놓은 지분이 많으니 회장님이 지배주주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고위직 공무원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청와대를 수익모델로 삼았다”고 표현했다. 요즘 드러나는 걸 보면 과장만은 아니다. ㈜청와대는 이건희 회장도 정몽구 회장도 가져보지 못한 계열사다. 그러니 다른 회장님들은 다 허깨비다. 진짜 회장님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몇백억원씩 상납했다. 그렇게 해서 차린 계열사가 ㈜미르고 ㈜케이스포츠다. 회장님 위의 회장님이고 ‘왕중왕’이다. 그런 회장님이 청와대 안종범 수석을 부르는 호칭이 ‘안 선생’이다. 기분 좋으면 ‘안 선생님’이다. 회장님이 그리 부르니 주변 사람들도 쉬이 보고 그리 불렀다. 어떤 이는 7월11일 ‘안종범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이의 휴대전화에는 아예 ‘안 선생’으로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취재 과정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거다. 왜 그리 불렀을까? 나이가 두어살 아래이니 경로사상이 발동한 건 아닐 게다. 아마도 수석이란 명칭이 껄끄러웠지 싶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수석님’이라고 부르며 사적인 심부름을 시킨다면 회장님인들 맘이 편하겠나. 더군다나 수석이라는 말에는 우두머리란 의미가 담겨 있다.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된 명칭이다. 하지만 회장님이 보기에는 그저 계열사의 한 직원일 뿐이다. 그렇다고 ‘안 전무’나 ‘안 상무’로 부르기에는 남들 눈총이 따갑다. 그래서 내린 답이 ‘안 선생’이다. 안종범 수석은 국감에 나와서 회장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지면의 1면을 보시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겨레>는 안 수석의 거짓말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낼 것이다. 안 수석도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겨레>가 취재한 바로는 ‘안 선생’은 회장님의 뜻을 성심성의껏 받드는 충직한 직원이었다. 누구를 만나라면 만나고 어디를 가라면 갔다. 심지어 점심 약속을 두 탕 뛰면서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회장님의 지시사항이 우선이니 경제수석에서 정책조정수석으로 이어지는 청와대의 공직은 뒷전이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안 수석은 존재감이 없단다. 경제부처의 국장, 과장들이 대면 보고를 가면 큰 그림은 그려주지 않고 조그만 트집을 잡아서 혼내기만 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무능하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서 무릎을 친다. “아! 최순실 심부름 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챙기지도 공부하지도 못했구나.” 그사이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됐다. 바다에서는 한진해운이 가라앉고, 땅에서는 부동산 값이 치솟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거리를 헤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가 공무원은 ‘투잡’이 금지돼 있다. 정신을 딴 데 팔면 나랏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중히 권고드린다. 하나만 하시라. 청와대 수석이 주업인지 부업인지는 모르겠지만….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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