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8 19:07
수정 : 2017.01.08 22:31
김영희
사회에디터
“박근혜 대통령 간담회 한 것을 보면서, 바보같이 받아 적기만 한 기자들에 대해 새삼 실망했었습니다.” “기자들도 어젠 많이 물었죠.” “물어보면 뭐하나요? 뻔한 거짓말을 전혀 반박도 못하고.”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간 문자메시지다. 대통령에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일갈하던 그가 말미에 항의를 해왔다.
대통령이 새해 벽두 기자들과 만난 자리의 파장이 크다. 직무정지 상태인 대통령이 기자들을 부른 형식과 의도가 비난받지만, 불똥은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에게도 튀었다. 에스엔에스엔 ‘나라면 안 갔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청와대 기자단을 해체하라는 언론단체시국회의의 성명도 나왔다.
정치부와 출입기자 등에게 당일 상황을 물었다. 1일 오전 한광옥 비서실장이 떡국 오찬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고, 점심 중 홍보수석이 대통령이 출입기자들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출발 시간까지 불과 20여분. 부랴부랴 기자실로 달려가 보고하고 속보 보내고 ‘신년 다과회’ 장소로 떠나야 했다.
아마 논란을 벌일 겨를조차 없었을 게다. 거부를 하려 해도 각자 보고하고 각기 다를 게 뻔한 회사 간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날은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약간 있었던 듯 싶다.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이뤄질 거라고 귀띔했거든요.” 실제 1, 2차 담화문 발표를 거치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읽는’ 자리임이 명확해지면서 <한겨레> 등 몇몇 매체는 3차 담화 발표장엔 가지 않았다.
논란이 된 노트북 불허 문제도 그렇다. 대통령의 직무정지 사항에는 기자회견도 포함된다. 기자들이 정식 회견을 요구할 수도 없고, 서서 진행되는 티타임 형식에 무용지물인 노트북 문제로 다툴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대리인만 내세울 뿐 한번도 자신의 의혹에 대해 직접 입을 열지 않았던 대통령이 질문을 받겠다고 한 점이었다.
1일 영상과 내용을 보면, 블랙리스트에 대해 묻자 “난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대통령에게 기자들은 “유 전 장관이 항의를 했다는데 몰랐냐” “문체부로 압력이 내려와 대통령 만나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며 재차 삼차 물었다. 충분히 ‘몰아세우지’ 못했다는 이들도 많지만, 기자는 취조가 아니라 취재하는 사람이다.
현장은 예단 금물이다. 얼마 전 사회부 기자들을 보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갔을 때, 바람 통하는 주차장엔 기자들이 쭈그리고 앉거나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올라가서 성실하게 답하겠습니다.” 소환 대상자들의 앵무새 발언에 매번 당하면서도 혹시 표정 하나 말 한마디 다를까봐 기자들은 현장을 떠나지 못한다.
대통령의 간담회 내용은 ‘역시나’였지만, 보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공소장에 나온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 못해 “엮었다”고까지 하면서 간간이 미소짓는 표정은 기가 막혔다. 최순실의 장차관 추천을 묻자 “여기 계신 분들도 추천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블랙리스트로 배곯는 문화인들 때려잡아 놓고 “벤처단지에 젊은 문화인들이 입주공간을 늘려달라더라. 그런 것들이 다 멈췄다”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대통령의 수준과 전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청와대의 지지층 결집 전략에 들러리가 된다는 비판이 이해는 가지만, 저런 해명에 돌아설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돌아설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또 기자들을 만나겠다면? 개인적으론 그런 ‘꼼수’ 간담회를 반복 못하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내용 없는 만남은 필요없다”는 기자들의 집단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의 상황 변화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현장을 가는 건 기자의 숙명 아닐까. 참, “검찰과 헌재는 왜 피했느냐”는 질문도 꼭 부탁한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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