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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6 17:55 수정 : 2017.02.26 20:43

권혁철
지역에디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시도했던 청와대 압수수색이 결국 무산됐다. 청와대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110조 1항을 압수수색 거부 근거로 내세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청와대는 압수수색 불승인 사유서에서 ‘군사시설이자 보안문서가 산재돼 있는 청와대의 압수수색은 승낙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달 초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하자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청와대가 군사시설이고 공무상 비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 대상과 장소를 최소한으로 하였음에도 청와대 측이 불승인한 점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바”라고 말했다. 특검 쪽도 ‘청와대가 군사시설’이란 주장은 인정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청와대가 군사시설’이란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청와대 내부와 주변 곳곳에 군사시설이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청와대를 군사시설이라고 할 순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청와대에는 경호원들이 운동하고 무술을 익히는 연무관이 있고, 의사와 간호장교 등이 상주하는 의무동, 의무실이 있다. 연무관, 의무동, 의무실이 있다고 청와대를 체육시설, 의무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니,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압수수색을 거부하려면 좀 더 그럴듯한 다른 꾀를 냈어야 했다. 청와대가 군사시설임을 핑계로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은 궁색할뿐더러 국가안보정책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부끄러운 일이다. 특검 수사 기간 마감(28일)을 하루 앞두고 ‘청와대가 군사시설’이란 주장의 허실을 늦었지만 따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안보에는 전략적 수준, 작전적 수준, 전술적 수준 3가지 수준이 있다. 전략적 수준은 청와대, 작전적 수준은 한미연합사 같은 곳, 전술적 수준은 육군의 군단 이하 제대, 해군의 함대사령부, 공군의 비행단이 맡는다. 청와대(국가안전보장회의)는 국가이익, 국가목표를 달성하는 방책으로 전략을 짠다. 청와대는 전쟁이나 외국과의 갈등·분쟁이 생기면 외교·경제·문화·군사수단 가운데서 정책수단을 선택해 분쟁 해결을 시도한다. 작전적 수준에서는 전략적 수준에서 정한 목표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의 전투력을 어떻게 운용할지를 고민한다. 육군의 군단 이하 제대, 해군의 함대사령부, 공군의 비행단이 야전에서 벌이는 구체적인 군사행동이 전술적 수준의 내용이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 초중반에 청와대, 국무회의-국방부-각군 본부(정책), 청와대, 국무회의-합참, 각군 본부-군(전략)으로 짜인 국방정책과 전략의 수준별 관계체계를 갖췄다. 국가안보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는 국방부, 합참, 육해공군본부 등을 통해 군을 지휘한다. ‘청와대가 군사시설’이라는 압수수색 거부 주장은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를 군부대쯤으로 여기는 짧은 발상에서 나온 듯하다. 머리 구실을 하며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할 청와대가 합참, 해군 함대사령부, 육군 군단, 공군 비행단 등 몸통과 팔다리가 할 일을 하려고 하면 안된다.

지난 25일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청와대 근무자들이 청와대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심각한 문제다. ‘청와대가 군사시설’이란 압수수색 거부 논리를 접하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버금가는 국정무식 사태라고 나는 생각했다. 현재 청와대 근무자들이 얼마나 더 일할지 알 수 없지만 정권안보를 위해 국가안보체계를 흔드는 주장은 삼갔으면 한다.

*국가안보 3가지 수준, ‘청와대 군사시설’에 대한 비판 근거 등은 권영근 한국국방개혁연구소장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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