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2.06 18:17 수정 : 2017.12.06 19:29

박민희
국제 에디터

요즘 중국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일으키고 있는 단어는 디돤런커우(低端人口)다. 하층민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단어는 애초 저소득계층·저임금노동자 등을 지칭하는 정책·학술 용어였지만, 최근 베이징시 당국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쪽방촌 철거작전을 벌이면서 중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단어가 됐다.

11월18일 베이징 남부 다싱구 신젠촌의 낡고 초라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19명이 숨졌다. 대부분 농촌에서 올라와 궂은일을 하던, 흔히 ‘농민공’으로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이었고, 8명은 어린이였다.

비극을 또 다른 비극이 덮쳤다. 화재 다음날 이 마을을 비롯한 베이징 시내 곳곳의 저소득층 집단거주지에 안전 문제를 이유로 집을 곧바로 비우라는 통지서가 나붙었다. 강제로 전기와 물이 끊겼고, 철거반원들이 주민들을 위협해 쫓아내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에 싸들고 나올 수 있는 것들만 겨우 챙겨 나온 사람들의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베이징 곳곳의 쪽방촌들은 순식간에 불도저로 밀리고 부서져 폭격을 당한 듯 폐허로 변했다. 얼마 뒤면 ‘안전하고 깨끗한’ 고급 아파트 단지나 상가로 변하게 될 것이다. 당국은 안전을 위한 조처라고 강조했지만, 베이징시 인구 관리를 위해 화재 참사를 핑계 삼아 ‘하층민 내쫓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시민들의 분노도 들불처럼 퍼졌다.

관영언론과 검색 사이트에선 관련 내용이 모두 검열당했지만, 중국 최대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웨이신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소식과 토론이 검열과 숨바꼭질을 하며 이어진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에서 외지인의 아이가 베이징, 상하이의 아이와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없고, 호구(후커우)가 없고 점포를 임대할 돈이 없는 노점상, 농민공은 내쫓기고 그들의 마을과 셋방은 철거된다. (…)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가?”

중국 베이징 남부 다싱구의 쪽방촌에서 지난달 말 당국의 갑작스러운 철거 통지를 받은 주민들이 살림살이를 챙겨 쫓겨나고 있다. 중국노동통신(CLB) 누리집

중국 베이징 쪽방촌에서 철거된 건물들이 폭격을 맞은 듯 폐허로 변한 모습을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장짠보가 찍어 웨이보에 올린 사진. 웨이보 갈무리

쫓겨난 젊은 노동자 4명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절규하듯 외치는 동영상도 마음을 울린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하며 지내왔다. 이제 우리 목소리를 내고 싶다. 진실은 (정부의) 사무실이나 회의실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 속에, 찬 바람 속에, 거리에 있다. (…) 우리는 낮은 곳에서 살지만, 하층인간은 아니다.”

폭력적 철거는 중국의 고속성장이 여전히 농민과 농촌의 희생 위에서 도시의 성장률을 중심으로 질주하면서 불평등의 위험을 계속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에선 시진핑 정부 들어 중국에서 거의 사라진 듯 보였던 비판적 논쟁이 불붙고, 많은 시민들이 정부에 ‘멈추라’고 요구하며 내쫓긴 이들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는 등 자발적 활동에 나선 모습은 변화와 희망이다.

국제면을 책임지는 에디터로서 이 문제를 처음부터 충분히 보도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한국 독자들이 이런 문제는 관심 없을 거야”라는 자기 검열이 작동했다. 한국 언론에서 중국 관련 보도는 사드 갈등이나 북한 핵·미사일 도발 뒤 중국이 어떤 제재에 나설 것인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 사회의 복잡한 변화를 전달하려는 역할은 소홀해지기 쉽다. 아니면 중국의 문제를 부풀려 지나치게 큰 위기처럼 보도하거나, ‘독재’ ‘인권 무시’로 간단히 재단해 중국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한국 기자로는 처음으로 김외현 특파원이 철거 뒤 폐허로 변한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전했다. 그들은 1970년대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된 서울 변두리의 사람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의 주인공들, 용산참사까지, 우리가 겪어온 고통과도 맞닿아 있다. 낯선 중국 사회주의-시장경제의 난해한 현실 속 사람들의 고민과 변화의 움직임을 더욱 열심히 보도하겠다고 다짐한다.

minggu@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편집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