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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0 17:37 수정 : 2017.12.10 18:52

박현
경제 에디터

“선생님, 생필품이 부족한 사람이 수천명, 기본적인 생활도 힘겨운 사람들이 수만명에 이릅니다.”(기부금 모금자)

“구빈원으로 보내는 게 어때요?”(스크루지)

“그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사람들도 많고요.”(기부금 모금자)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면 그렇게들 하라고 하시오. 남아도는 인구를 줄이고 좋구먼. 외람된 말이지만, 난 그런 일은 도통 모르오.”(스크루지)

1843년 발간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산업혁명 초기 영국 런던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부를 일구기 시작했으나 분배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중·하류층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로 대표되는 상류층은 분배가 나라를 망칠 것이라며 사회보장 정책에 반발했는데, 디킨스는 이 소설을 통해 이를 통렬하게 꼬집었다.

디킨스가 고발한 빈부격차가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는 170여년이 지난 2014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의해 측정됐다. 당시 과세 자료를 뒤져 따졌으니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추정이라 할 수 있다.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상위 10% 고소득층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이르는 국가를 매우 불평등한 나라로 규정짓고, 19세기 중·후반의 영국·프랑스와 현재의 미국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면 경제가 붕괴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으나,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볼 때 이를 ‘상징적 한계’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빈부격차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 분야 연구의 권위자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에서 가져가는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43.4%다. 이는 프랑스(33%), 영국(40%) 등 유럽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인 미국(47%)에 이어 2위다.

그런데 한국의 통계엔 주택 임대소득이 빠져 있다. 전·월세 임대소득에 대해 거의 과세가 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피케티는 프랑스의 경우 임대료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라고 추정했는데,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그 규모가 한해 150조원에 이른다. 임대료가 대부분 상위층 차지가 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포함하면 우리나라 상위 10%가 국민소득에서 가져가는 비중은 미국을 능가할 수도 있다. 우리의 불평등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얘기다.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과 세법에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들이 포함돼 있다. 소득세·법인세 인상과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을 보완하기 위한 일자리안정자금 조성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력과 재정여력을 따져볼 때 너무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소득세의 경우 ‘부자증세’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다. 이번에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및 세율 인상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할 대상자가 9만3천명인데, 이는 전체 소득자의 0.3%에 불과하다. 앞으로 면세점을 낮추는 노력과 동시에 상위 10%에 대한 세 부담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과제는 부동산 보유 및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다. 부동산 가격 급등과 전·월세 가격 급등에 따른 이익은 대부분 상위 10%에 돌아갔는데, 마땅히 내야 할 세금마저 내지 않는다면 집 없는 세입자들의 박탈감과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나라는 디킨스가 묘사했던 “쥐어짜고 비틀고 움켜쥐고 긁어내고 탐욕스러운 늙은 스크루지”가 상징하는 ‘스크루지 경제’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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