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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4 17:58 수정 : 2017.12.24 18:55

권혁철
사회2 에디터

지난달 제주4·3평화재단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3분의 1은 제주4·3이 무슨 일인지 모르고 또 절반은 ‘4·3에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 결과를 듣고,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컸던 제주 4·3(1947~1954)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는 자책이 들었다. 4·3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주민 3만명 안팎(당시 제주 인구의 약 10분의 1)이 숨졌다.

내년에 70주기를 맞는 4·3을 어떻게 보도할까 고민하다 지난주 휴가를 내 제주를 다녀왔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제주 4·3평화공원-너븐숭이 4·3기념관-터진목 4·3유적지-섯알오름 4·3유적지 등 4·3의 아픔을 따라갔다.

지난 21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기념관’에 들어서니 입구 소나무 밭에 20여기 돌무덤이 보였다. 검은색 현무암 20~30개로 얼기설기 만든 초라한 무덤이었다. 몇몇 무덤 위에는 노란색 플라스틱 오리 장난감과 아기 양말 등이 덩그러니 있었다. 애기 돌무덤이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입구의 애기 돌무덤
4·3 북촌리 학살 때 숨진 어른들의 주검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안장했으나 어린아이들의 주검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20여기의 애기무덤 중 적어도 8기 이상이 북촌리 학살 때 숨진 어린이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1949년 1월17일 북촌리 근처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의 공격으로 숨지자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들을 보복 학살했다. 당시 북촌리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같이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북촌리 학살 희생자는 462명(제주4·3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신고 기준)이다. 북촌리 학살의 참상은 소설가 현기영이 <순이 삼촌>으로 세상에 알렸다.

너븐숭이 애기 돌무덤 전경
돌무덤 앞에는 ‘애기 돌무덤 앞에서’(양영길)라는 추모 시비가 있다.

“…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너븐숭이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아직 눈도 떠 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눈에는/ 너무 낯선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지난 22일 오후 모슬포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제주 송악산 근처 섯알오름.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앞 제단 위에는 술잔 4개와 검정 고무신 4켤레가 놓여 있었다.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제단에는 고무신이 놓여 있다 고무신 안에는 저승길 노잣돈으로 쓰라고 넣어둔 것으로 보이는 동전들이 있다.
추모비 앞 진입로에는 또 고무신들이 있다. 이 고무신들은 베개, 담요 모양 금속조형물들에 눌려 있다. 이들은 지난 8월28일(음력 칠월 칠석) 제막된 ‘증거인멸의 장소’란 시설물이다. 이상숙(92)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 4500만원을 내서 당시를 회상하며 ‘영구불망(永久不忘)의 돌(碑)’을 세웠다고, 설명문에 적혀 있다.

희생자들의 불태워진 소지품을 형상화한 ‘증거인멸의 장소’란 조형물에 검정고무신이 눌려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예비검속령을 발령했고, 이상숙 할머니의 남편은 지식인(초등학교 교사)이란 이유로 불법구금됐다가 1950년 8월20일(음력 칠월 칠석) 새벽 섯알오름에서 국군에 의해 총살됐다. 8월20일 새벽 트럭에 실려 섯알오름 길을 향했을 때 희생자들은 신었던 검정 고무신을 벗어던지며 마지막 가는 길을 가족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칠석날 오작교처럼 고무신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다리였다. 길 위 흩어진 고무신을 따라 이상숙 할머니 등 유족들이 달려왔을 때는 군인들이 학살을 끝내고 증거인멸을 위해 희생자들의 담요, 베개, 옷 등 유품을 불태우고 있었다. 1950년 7월16일과 8월20일 모슬포경찰서 관내에서 예비검속된 252명이 학살됐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70년 전 불편한 과거를 굳이 알아야 하느냐’는 사람들에게는,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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