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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31 18:45 수정 : 2018.01.31 19:27

안영춘
디지털 부문장 겸 총괄기획 에디터

18년 만의 혹한 기록이 연일 경신되던 며칠 전 출근길, 숨을 헐떡이며 실외 승강장에 막 내려서려는 순간 전동차 문이 스르르 닫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경우 ‘스르르’는 빠르다거나 느리다고 할 수 없는, 다만 염장 지르는 속도의 의태어다. “아, 억울해!” 정시에 출발한 열차에 대고 맥락 없는 탄식이 허연 입김에 섞여 마스크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억울함’이 2018년 벽두를 북극발 한파처럼 뒤덮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부터 가상통화 규제,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이르기까지, 억울함으로 충만한 감정은 고공비행하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마저 하강기류로 빨아들일 태세다. 직접당사자만의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단일팀 구성으로 성적이나 출전 기회에 변수가 생긴 남쪽 선수는 최대 23명이지만, 많은 이들이 제 일처럼 억울함을 표출한다.

그 바탕에는 나름의 서사까지 갖춘 너른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다. 정규직과 국가대표 자리는 갖은 노력과 경쟁 끝에 획득한 전리품인데, 비정규직과 북쪽 선수들은 힘들이지 않고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다. 가상통화 투자를 투기라고 비난하는 이들이야말로 온갖 투기로 부의 성채를 쌓고 문을 걸어 잠근 기득권층인데, 모처럼 새로 등장한 사다리마저 걷어차려고 한다. 억울함의 이면에는 공정성에 대한 정의 감정이 불타오른다.

억울함을 공유하는 이들이 대체로 젊은 축이고 경쟁과 능력주의를 사회정의와 동일시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쉽게 세대론적인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사회적 연대와 평화 공존에 관심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정규직 자리를 하늘의 별 따기로 만들고, 평창올림픽을 한사코 이념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려는 세대는 누군가. 기성세대는 얼마나 능력주의를 멀리했기에 10여 년 전 온갖 비리 의혹을 사던 이명박을 능력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으로 뽑은 건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가상통화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날린 젊은이는 삼포세대인가. 그가 낭패를 본 건 그럴 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대의 특성보다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잉상태가 이 ‘억울 정국’과 더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본다.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수천 건의 가상통화 규제 반대 청원은 상징적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 본 적 있습니까?’ 민주공화국 정부가 국민에게 져야 할 책임은 대박의 꿈이 아니라 균등하고 안정적인 삶이다. 사회구조와 거리가 먼 문제들까지 ‘정의의 이름으로’ 정치 공론장에 불러내고, 특히 최고권력자 한 사람을 통해 해법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과잉의 정치는 억울을 증식할 뿐이다.

‘오마하의 현자’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이 가상통화의 장래를 어둡게 내다봤다고 한다. 그의 예지력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가상통화의 5년 만기 풋 옵션(가격이 내려가면 이익을 얻는 파생상품)을 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그의 말엔 관심이 많다. 투기 자본주의의 본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잃어야 누군가 딸 수 있는 제로섬의 법칙에서 가상통화 시장도 예외일 수 없고, 최종 승자는 현자 반열에 오른 이로 이미 내정돼 있다.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억울하지 않은가. 통근열차를 눈앞에서 놓친 심정에는 댈 수도 없을 만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수직으로 서는 건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서는 것이다. 그 안에서 벌이는 노력과 경쟁은 공정이나 정의의 착시일 뿐이다. 억울한 이들은 갈등, 반목, 대결을 부추기는 운동장의 설계자들과 맞서야 한다. 필요하면 꼰대들과 연대해서라도.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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