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디터 영화 〈B급 며느리〉가 잔잔한 화제다. 상영관이 몇 곳 안 된다. 하지만 선호빈 감독이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을 ‘셀프 디스’하듯, 날것 그대로 담아낸 셀프고발 다큐멘터리는 1월17일 개봉 뒤 입소문을 타고 관객 1만명을 넘어섰다. “명절에 시댁에 안 내려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결혼 3년 차 주인공 김진영씨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묻는다. 손자만 볼 수 있으면 된다는 시어머니에게 “제가 싫으면 제 아들도 못 본다”고 반격한다. 시어머니 조경숙씨의 대응도 만만찮다. 감독은 자신의 처지를 ‘등 터진 낀 새우’라고 표현한다. 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곱게 차려입고 고향을 찾는 ‘정상 가족’의 풍경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현실에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닐 수 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남편’도 있지만, ‘B급 며느리’ ‘C급 사위’도 많다. “왜, 남의 집 차례상에 내가 음식을” “도대체 우리 집은 언제 가나”…. 생각도 다르다. 불효막심. 손가락질할 수 있다. 하지만 ‘명절 뒤 이혼율 증가’, 이 오랜 통계는 현실을 드러낸다. 누군가 묵묵히 희생을 감수하거나, 딸과 며느리에게 ‘동일노동’ 원칙을 적용하는 집안을 빼면, 명절 내내 곳곳에서 교통체증만큼이나 신경전이 계속될 게다. 결혼 20년이 넘었지만, 명절 풍경은 비슷하다. 아무리 배려했다 생각해도, 서로의 착각일 뿐이다. 아무리 공평하고 관대한 시댁도, 무한히 살가운 처가도 불편하다. ‘시월드’ ‘처월드’에 몇 시간 더 머무는 것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많이 봤다. 명절 뒤 아예 갈라선 지인도 있다. ‘슬기로운 명절생활’이 필요하다. 당당히 ‘B급 며느리’ ‘C급 사위’가 되면 어떨까. 분란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신경전에 에너지 소모 말고, 형편 닿는 대로 살자는 얘기다. 시월드에서 남편과 시동생에게 전 부치기에 동참하라 요구하자. 처월드에선 홀연히 사라져 취미생활을 하자. 어르신들도 역지사지, 금쪽같은 내 자식이 다른 시월드, 처월드에서 애쓰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좀 더 ‘슬기로운 명절생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각자도생해보자. ‘너희 집 일은 네가, 우리 집 일은 내가’. 소설가 장강명이 <5년 만에 신혼여행>에서 일찌감치 터득, 설파한 해법이다. 아내와 남편 모두 각각 자기 부모를 찾아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다. 눈치가 보일 게다. 쑥덕일 게다. 그쯤은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팔순 아버지의 결단 덕분이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실 차례상, 좀 난감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 근처 절에 합동차례를 모셨다. “아무도 말 안 하는데, 서로 불편하게 할 게 뭐냐. 설날 아침 10시까지 절로 오면 된다.” 집안 제사와 차례를 모시며 궂은일 감내하던 어머니가 가신 뒤,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는 선택이다. 미안했지만, 홀가분하고 감사하다. 절대금물. 이런 일로 인간의 도리를 말하면 안 된다. 현실을 받아들일 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사라진 것도,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젯밥 얻어먹기 어려운 세상이 올 것이다. 어머니 세대엔 종갓집이나 큰집의 늙은 맏며느리가 차례 음식이며 제사상을 차려냈다. 늙은 며느리의 고통에 기댄 ‘효성 예식’은 머지않은 미래에 ‘민속’이 될 수 있다. 사족 하나. 미혼자, 취업준비생도 배려하자. 그들도 명절증후군을 겪는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다. 언제 결혼할 건지, 취직 준비는 잘 되는지…. 묻지 말고, 쿨하게 ‘슬기로운 명절’을 보내자. skshin@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슬기로운 명절생활 / 신승근 |
정치에디터 영화 〈B급 며느리〉가 잔잔한 화제다. 상영관이 몇 곳 안 된다. 하지만 선호빈 감독이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을 ‘셀프 디스’하듯, 날것 그대로 담아낸 셀프고발 다큐멘터리는 1월17일 개봉 뒤 입소문을 타고 관객 1만명을 넘어섰다. “명절에 시댁에 안 내려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결혼 3년 차 주인공 김진영씨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묻는다. 손자만 볼 수 있으면 된다는 시어머니에게 “제가 싫으면 제 아들도 못 본다”고 반격한다. 시어머니 조경숙씨의 대응도 만만찮다. 감독은 자신의 처지를 ‘등 터진 낀 새우’라고 표현한다. 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곱게 차려입고 고향을 찾는 ‘정상 가족’의 풍경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현실에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닐 수 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남편’도 있지만, ‘B급 며느리’ ‘C급 사위’도 많다. “왜, 남의 집 차례상에 내가 음식을” “도대체 우리 집은 언제 가나”…. 생각도 다르다. 불효막심. 손가락질할 수 있다. 하지만 ‘명절 뒤 이혼율 증가’, 이 오랜 통계는 현실을 드러낸다. 누군가 묵묵히 희생을 감수하거나, 딸과 며느리에게 ‘동일노동’ 원칙을 적용하는 집안을 빼면, 명절 내내 곳곳에서 교통체증만큼이나 신경전이 계속될 게다. 결혼 20년이 넘었지만, 명절 풍경은 비슷하다. 아무리 배려했다 생각해도, 서로의 착각일 뿐이다. 아무리 공평하고 관대한 시댁도, 무한히 살가운 처가도 불편하다. ‘시월드’ ‘처월드’에 몇 시간 더 머무는 것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많이 봤다. 명절 뒤 아예 갈라선 지인도 있다. ‘슬기로운 명절생활’이 필요하다. 당당히 ‘B급 며느리’ ‘C급 사위’가 되면 어떨까. 분란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신경전에 에너지 소모 말고, 형편 닿는 대로 살자는 얘기다. 시월드에서 남편과 시동생에게 전 부치기에 동참하라 요구하자. 처월드에선 홀연히 사라져 취미생활을 하자. 어르신들도 역지사지, 금쪽같은 내 자식이 다른 시월드, 처월드에서 애쓰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좀 더 ‘슬기로운 명절생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각자도생해보자. ‘너희 집 일은 네가, 우리 집 일은 내가’. 소설가 장강명이 <5년 만에 신혼여행>에서 일찌감치 터득, 설파한 해법이다. 아내와 남편 모두 각각 자기 부모를 찾아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다. 눈치가 보일 게다. 쑥덕일 게다. 그쯤은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팔순 아버지의 결단 덕분이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실 차례상, 좀 난감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 근처 절에 합동차례를 모셨다. “아무도 말 안 하는데, 서로 불편하게 할 게 뭐냐. 설날 아침 10시까지 절로 오면 된다.” 집안 제사와 차례를 모시며 궂은일 감내하던 어머니가 가신 뒤,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는 선택이다. 미안했지만, 홀가분하고 감사하다. 절대금물. 이런 일로 인간의 도리를 말하면 안 된다. 현실을 받아들일 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사라진 것도,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젯밥 얻어먹기 어려운 세상이 올 것이다. 어머니 세대엔 종갓집이나 큰집의 늙은 맏며느리가 차례 음식이며 제사상을 차려냈다. 늙은 며느리의 고통에 기댄 ‘효성 예식’은 머지않은 미래에 ‘민속’이 될 수 있다. 사족 하나. 미혼자, 취업준비생도 배려하자. 그들도 명절증후군을 겪는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다. 언제 결혼할 건지, 취직 준비는 잘 되는지…. 묻지 말고, 쿨하게 ‘슬기로운 명절’을 보내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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