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에디터 메달보다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하는 선수들의 밝은 모습에 덩달아 유쾌했던 보름여의 시간이 지났다. ‘평창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향한 ‘평화 올림픽’은 이제 막 출발선을 내디뎠을 뿐이다. 남남갈등, 북핵, 북-미 대화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런데도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잇따라 남한 땅을 밟고, 펜스 미국 부통령 역시 물밑이나마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향한 화려한 조명에 가려졌지만 올림픽 기간 중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만남은 또 있었다. 지난 19일 이뤄진 스웨덴과 한국 외교부 장관의 회담도 그중 하나다. 강경화 장관은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스웨덴의 지속적 역할”을 당부했고, 발스트룀 장관은 “북-미 간에 더 많은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게 도울 것이 있다면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스웨덴이 북한과의 돈독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북-미 사이에 ‘막후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맺어온 끈끈한 인연의 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사민당 출신으로 스웨덴 총리가 된 올로프 팔메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미시위에 직접 참여할 만큼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했다. 실제 그는 중립적 외교정책과 함께 평화운동의 리더로 제3세계 국가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북한은 이런 스웨덴의 역할을 지지했고 한편으론 자본주의 서방국가로부터 공식 국가로 인정받길 원했다. 그러나 경제적 실리 즉 ‘돈’을 빼놓고 두 나라 간 외교관계의 급진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당시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을 크게 앞질렀고 한때 25%라는 믿기 어려운 경제성장률을 보이기도 했다. 스웨덴은 이런 북한을 성장 잠재력이 큰 신흥 수출시장으로 판단했다. 반면 북한은 광물자원 개발, 중공업 육성 등을 위해 스웨덴의 고급 기계설비가 필요했다. ‘대박’을 꿈꾼 스웨덴은 기업들을 독려해 7천만달러어치의 광물 채취 장비, 화물 트럭과 함께 택시용 볼보 승용차 1천대를 북한에 보냈다. 스웨덴이 1973년 서방국가로는 처음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2년 뒤 평양에 대사관까지 연 이유는 이런 경제교류를 뒷받침하고 확장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투자는 ‘도박’이었음이 드러난다. 중국과 소련의 분열로 북한에 대한 원조가 급감하자 북한 경제는 주저앉았고, 국제 광물값 급락까지 겹쳐 수입품 대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빚은 연체이자 등이 더해져 이젠 3억2천만달러(약 3300억원)로 불어났다.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스웨덴은 지금도 이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돈을 되돌려받으려는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다. 매년 채무 상환을 요구하는 형식적 서류를 북한에 보낼 뿐이고 북한 역시 “돈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빚과 함께 대사관, 볼보 택시는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다. 대신 스웨덴은 ‘실패한 투자’의 대가로 북한 지도부의 신뢰를 얻었다. 그 가치가 3천억원에 버금간다고 여기는지, 또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스웨덴은 1990년부터 인도적 지원 명분으로 유엔 국가 중 가장 많은 돈을 북한에 쓰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을 때도 스웨덴과의 교류는 끊기지 않는 이유다. 두 나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 자국민 보호 임무를 위탁하고 있다. 스웨덴이 북한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최소한 북한을 ‘깡패 국가’나 ‘악의 축’으로 대접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miso@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북한이 갚지 못한 스웨덴 빚 3천억 / 이재명 |
디지털 에디터 메달보다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하는 선수들의 밝은 모습에 덩달아 유쾌했던 보름여의 시간이 지났다. ‘평창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향한 ‘평화 올림픽’은 이제 막 출발선을 내디뎠을 뿐이다. 남남갈등, 북핵, 북-미 대화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런데도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잇따라 남한 땅을 밟고, 펜스 미국 부통령 역시 물밑이나마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향한 화려한 조명에 가려졌지만 올림픽 기간 중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만남은 또 있었다. 지난 19일 이뤄진 스웨덴과 한국 외교부 장관의 회담도 그중 하나다. 강경화 장관은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스웨덴의 지속적 역할”을 당부했고, 발스트룀 장관은 “북-미 간에 더 많은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게 도울 것이 있다면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스웨덴이 북한과의 돈독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북-미 사이에 ‘막후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맺어온 끈끈한 인연의 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사민당 출신으로 스웨덴 총리가 된 올로프 팔메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미시위에 직접 참여할 만큼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했다. 실제 그는 중립적 외교정책과 함께 평화운동의 리더로 제3세계 국가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북한은 이런 스웨덴의 역할을 지지했고 한편으론 자본주의 서방국가로부터 공식 국가로 인정받길 원했다. 그러나 경제적 실리 즉 ‘돈’을 빼놓고 두 나라 간 외교관계의 급진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당시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을 크게 앞질렀고 한때 25%라는 믿기 어려운 경제성장률을 보이기도 했다. 스웨덴은 이런 북한을 성장 잠재력이 큰 신흥 수출시장으로 판단했다. 반면 북한은 광물자원 개발, 중공업 육성 등을 위해 스웨덴의 고급 기계설비가 필요했다. ‘대박’을 꿈꾼 스웨덴은 기업들을 독려해 7천만달러어치의 광물 채취 장비, 화물 트럭과 함께 택시용 볼보 승용차 1천대를 북한에 보냈다. 스웨덴이 1973년 서방국가로는 처음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2년 뒤 평양에 대사관까지 연 이유는 이런 경제교류를 뒷받침하고 확장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투자는 ‘도박’이었음이 드러난다. 중국과 소련의 분열로 북한에 대한 원조가 급감하자 북한 경제는 주저앉았고, 국제 광물값 급락까지 겹쳐 수입품 대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빚은 연체이자 등이 더해져 이젠 3억2천만달러(약 3300억원)로 불어났다.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스웨덴은 지금도 이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돈을 되돌려받으려는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다. 매년 채무 상환을 요구하는 형식적 서류를 북한에 보낼 뿐이고 북한 역시 “돈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빚과 함께 대사관, 볼보 택시는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다. 대신 스웨덴은 ‘실패한 투자’의 대가로 북한 지도부의 신뢰를 얻었다. 그 가치가 3천억원에 버금간다고 여기는지, 또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스웨덴은 1990년부터 인도적 지원 명분으로 유엔 국가 중 가장 많은 돈을 북한에 쓰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을 때도 스웨덴과의 교류는 끊기지 않는 이유다. 두 나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 자국민 보호 임무를 위탁하고 있다. 스웨덴이 북한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최소한 북한을 ‘깡패 국가’나 ‘악의 축’으로 대접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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