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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16 18:22 수정 : 2018.12.16 23:26

이지은

정치사회에디터

지난여름,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접한 소식 가운데 다소 뜻밖이었던 것은 이해찬·손학규·정동영이 각 당의 대표를 맡게 된 거였다. 11년 전 이들 셋을 쫓아다닐 때가 생각났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다. 당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범여권이 이리 쪼개지고 저리 쪼개졌다가 합쳐져 치렀는데, 취재하는 게 정말 맥 빠졌다. 이명박·박근혜가 맞붙은 한나라당 경선이 대선 본선이라고들 했다. 질 게 뻔한 자리를 놓고 싸워서 그랬는지 한가닥 희망을 주는 메시지도, 공약도 없었다. 이명박 욕하기에 바빴다. 그보다는 아무 반성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당시 3등을 했던 이해찬은 현재 집권여당 대표다.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 여당을 하고 정권을 잃은 민주당(계속 헤쳐모여 하면서 이름이 바뀌었으니 그냥 민주당이라고 하자)은 10년 가까이 야당을 하다가, 2017년 촛불혁명 덕분에 다시 여당이 됐다. ‘덕분에’라는 말이 고깝게 들리는 민주당 분들은 ‘예뻐서 찍어주는 줄 아나’라는 말을 새겨듣기 바란다. 민주당이 정기국회 때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더불어한국당’이라고 비판받은 그 거대한 양당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를 준 사람이 많다는 걸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저 당이 욕먹을 짓을 해서 이 당이 이기고, 이 당이 무능해서 저 당이 이기는 선거를 되풀이해 왔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부인한다면 정신승리다.

덕분에 여당, 이 되어서는 한마디로 업무태만이다. 주52시간 근무제는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않고 탄력근로제 확대에 목을 매고, 탄력근로제 같은 ‘주요 현안’이 많다며 정부가 낸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은 “기업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내팽개쳐 두었다. 그러는 사이 하청업체 비정규직 24살 김용균은 밤에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김용균들은 ‘안전수칙 미준수. 사건 조사 후 징계 및 과태료’ 표지판 하나 달랑 놓인 일터로 밥 벌러 간다. 권력기관 개혁안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묻어두고 해 넘어가는데도 한마디 없다.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경제민주화 입법도 줄줄이 멈춰 있다.

그러면서 야당 탓을 한다. 일견 맞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의 ‘침대축구’ 기술력은 매우 높다. ‘유치원 3법’을 국회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논의할 때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법 시행을 1~2년 유예하는 양보안까지 내놓았다. 한국당은 ‘1~2년 뒤에 법 시행을 다시 논의하자는 줄 알았다’며 나가버렸다. 지지세력의 이익 앞에선 드러누워 시간 끌고, 여론에 밀리면 창조적 전술을 구사하는 한국당 앞에 무력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모두 한국당 탓일까. 거대 양당이 이해가 맞으면 더불어 같이하고(예산안 강행 처리), 재계의 눈치를 보느라 서로 손도 안 댄 것(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아닌가? 정말 할 만큼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이해찬 대표는 ‘민주정부 20년 집권’을 내걸고 당대표가 됐다. 민주개혁 진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20년은 집권해야 한다고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우리 당이 손해’라며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말을 슬쩍 바꾼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거대 양당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또다시 빈손으로 다가와 야당 탓하며 표를 달라고 할 게 아니라면 당장 성과부터 보여달라. 당장 김용균이 더는 없게 하라. 여당 덕분에, 뭐든 좀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가?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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