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디터 누벨바그의 어머니라고 일컬어지던 아녜스 바르다가 28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바르다는 20대 중반에 기존의 영화문법을 깨는 작품을 발표하며 누벨바그의 첫 기수 역할을 했지만 고다르나 트뤼포, 남편이기도 했던 자크 드미 등 남성 동료들만큼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칸영화제 명예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빛나는 재능과 영화사에 기여한 공을 널리 인정받았다. 지난해 비로소 그의 작품이 국내 처음으로 공식 개봉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88살 영화감독 바르다와 33살 사진가 제이아르(JR)가 함께 프로젝트 여행을 떠나는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그 영화다. 프랑스 시골을 유랑하듯 다니며 평범한(그리고 비범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초대형으로 출력해 현장 전시를 펼치는 내용이지만 구순을 목전에 둔 그의 노년이 필연적으로 영화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지고 심해진 노안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을 화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평화로운 노년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영화는 마지막에 갑자기 흔들린다. 그는 오랜 친구이자 영화적 동지인, 성격 괴팍한 고다르의 집에 찾아간다. 고다르가 좋아하는 에클레르를 사가지고 5년 만의 만남에 설레며 도착한 집은 굳게 닫혀 있다. 유리창에 바르다만이 이해할 만한 짧은 두 문장을 써놓은 걸 보면 약속을 깜빡한 건 아니다. 만나기를 거부한 거다. 바르다는 상처 입은 영혼과 복잡한 심경을 제이아르에게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왜 바르다는 이렇게 영화를 끝냈을까. 해설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노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걸 봤다. 비노년층에게 노년은 추억을 끼니처럼 되새기며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 현재를 관조하는 삶이라고 여겨지지만 기실 젊은 날과 다름없이 상처받고 엉클어지는 뜨거운 속내를 지니고 있다는 걸 바르다는 보여준다.
칼럼 |
[편집국에서] 바르다가 사랑한 노년 / 김은형 |
문화에디터 누벨바그의 어머니라고 일컬어지던 아녜스 바르다가 28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바르다는 20대 중반에 기존의 영화문법을 깨는 작품을 발표하며 누벨바그의 첫 기수 역할을 했지만 고다르나 트뤼포, 남편이기도 했던 자크 드미 등 남성 동료들만큼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칸영화제 명예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빛나는 재능과 영화사에 기여한 공을 널리 인정받았다. 지난해 비로소 그의 작품이 국내 처음으로 공식 개봉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88살 영화감독 바르다와 33살 사진가 제이아르(JR)가 함께 프로젝트 여행을 떠나는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그 영화다. 프랑스 시골을 유랑하듯 다니며 평범한(그리고 비범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초대형으로 출력해 현장 전시를 펼치는 내용이지만 구순을 목전에 둔 그의 노년이 필연적으로 영화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지고 심해진 노안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을 화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평화로운 노년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영화는 마지막에 갑자기 흔들린다. 그는 오랜 친구이자 영화적 동지인, 성격 괴팍한 고다르의 집에 찾아간다. 고다르가 좋아하는 에클레르를 사가지고 5년 만의 만남에 설레며 도착한 집은 굳게 닫혀 있다. 유리창에 바르다만이 이해할 만한 짧은 두 문장을 써놓은 걸 보면 약속을 깜빡한 건 아니다. 만나기를 거부한 거다. 바르다는 상처 입은 영혼과 복잡한 심경을 제이아르에게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왜 바르다는 이렇게 영화를 끝냈을까. 해설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노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걸 봤다. 비노년층에게 노년은 추억을 끼니처럼 되새기며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 현재를 관조하는 삶이라고 여겨지지만 기실 젊은 날과 다름없이 상처받고 엉클어지는 뜨거운 속내를 지니고 있다는 걸 바르다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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