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0 19:25
수정 : 2019.04.11 14:40
김규원
전국 에디터
검찰 개혁이 열달째 헛바퀴를 돌리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법안을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공수처에 수사·기소권을 모두 줘서 이미 두 권한을 가진 검찰을 견제하려고 한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공수처에 기소권까지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 자체에 반대한다. 이 문제 탓에 패스트트랙에 함께 묶인 선거제 개혁안까지 발목이 잡혀 있다.
애초 검찰 개혁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지난해 6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합의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서 검찰에 ‘특수사건 수사권’을 남겨뒀기 때문이다. ‘특수사건’이라는 것은 부패, 경제, 금융·증권, 선거, 방위산업, 사법방해 등 대부분의 ‘중요 사건’이다. 따라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거의 줄어든 것이 없다. 이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경찰 수사에 대한) ‘2차적, 보충적 수사권’을 검찰에 주는 방안보다 후퇴한 것이다. 또 ‘수사-기소 권한 분리’라는 검찰 개혁의 대원칙도 무너졌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이란 용어를 쓴 순간부터 ‘프레임 싸움’에서 졌다는 생각도 든다. 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검경 사이에서’ 수사권을 ‘조정’하는 일이 아니라,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용어처럼 현재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의 근본(수사-기소 권한 분리)을 놓치고, 말단(공수처 설치)에 매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검찰을 개혁하려 한다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회수해 특수수사권을 공수처에 넘기고, 나머지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야 한다. 그리고 검찰은 본래 기능에 맞도록 수사 통제와 기소, 공소 유지 기관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강제수사권과 구속영장 청구권, 기소권 등을 한 손에 거머쥐고 ‘칼춤’을 춰온 검찰을 개혁하는 방안이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국가의 형벌권을 어느 한 기관이 독점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권한을 여러 기관으로, 여러 단계로 엄격히 분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경찰이나 검찰과 같은 기관들이 시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함부로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검찰은 이 권한들을 오로지하고 브레이크 없이 폭주해왔다. 그 권한을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고권력자와 자신의 집단 이익을 위해 활용해왔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무현 정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부에서 목격했다.
이런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취지를 이해하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만약 공수처가 현재의 검찰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다면 또 다른 검찰이 될 위험성은 없을까? 혹시라도 검찰이라는 ‘괴물’을 잡으려다 또 다른 ‘괴물’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한된’ 검찰이지 ‘또 다른’ 검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 제안한다. 이참에 검찰의 특수수사권을 모두 회수해 공수처로 넘기는 대신, 기소권을 그대로 검찰에 남겨두면 어떤가? 현재 한국당조차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한 검찰 개혁안을 내놓은 상태다. 다시 말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회수하는 일에 대해선 여야가 합의할 여지가 있다. 동시에 광역범죄 수사권을 제외한 경찰의 모든 권한(98.2%)을 자치경찰에 넘겨주면 검찰의 불만도 사라질 것이다. 경찰과 공수처의 범죄는 서로 수사하게 하면 된다. 다만 기소 기관인 검찰의 범죄는 공수처가 기소까지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검찰은 한때 그들이 말버릇처럼 되뇌던 ‘인권의 보루’가 될 수도 있다.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통제하고, 경찰과 공수처가 남발하는 불필요한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하며, 범죄 혐의가 없는 사람을 과감히 불기소하는, 그런 ‘인권의 보루’ 말이다. 이번에 검찰을 진짜 ‘인권의 보루’로 만들면 좋겠다.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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