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9 16:29
수정 : 2019.04.29 19:20
거의 한달에 걸쳐 연재한 탐사기획 ‘자영업 약탈자들’과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은 부동산이라는 하나의 소재에서 출발해 두 갈래로 나뉜 것이다. 지난해 여름 부동산값이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아우성이 높아질 때 저널리즘이 응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기획이었다. 헨리 조지와 토마 피케티를 떠올리며 한국 부동산 문제를 통시적으로 분석하고 지대(부동산)가 이윤(자본)과 임금(노동)을 압도하는 현실의 모순을 사례를 통해 실증해보려고 했다. 기획안을 만들었다 갈아엎기를 반복한 끝에 우리는 거대담론을 포기하고 살아 있는 팩트의 편에 서기로 했다. 상가 문제를 취재하다 알게 된 창업컨설팅이라는 존재, 그리고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위법적인 농지 소유와 잠재적 이해충돌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기획 모두 비교적 명확한 대립 구도를 갖게 됐다. ‘자영업자 : 창업컨설팅’ ‘농민 : 국회의원’이라는 대립 구도는 부조리한 현실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널리즘은 액션 히어로물이 아니어서 권선징악의 결말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주로 약자가 패배한다. 정보가 많은 쪽이 정보가 적은 쪽을, 돈과 힘이 있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약탈하는 일은 워낙 비일비재해서 평소엔 기삿거리조차 잘 안 된다. ‘여의도 농부님…’ 마지막 회에 등장한 강원도 철원의 80대 할머니가 그랬다. 생애 다섯번째 땅을 강제수용당할 위기에 처했다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해도 주요 매체엔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자영업 약탈자들’은 우리 사회 대표적 약자인 자영업자들을 등쳐서 먹고사는 ‘창업컨설팅’이라는 사기성 업종의 존재를 국내 언론 최초로 세상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기획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악플청정지역’으로 변한 인터넷 댓글창이었다. 평소 두 패로 나뉘어 저열한 언어를 주고받던 댓글창이 고마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걸 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말로만 약자와 소수자 편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건 아닌가. 권력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쟁투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독자들이 진정으로 언론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다.
‘여의도 농부님…’의 주제 중 하나인 경자유전 원칙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경자유전 타령이냐는 문제제기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경자유전 원칙은 헌법에만 존재했을 뿐 사실상 사문화된 지 오래다. 압축성장을 위해 필요한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려고 농민을 농지에서 몰아낸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이 문제는 농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덴마크와 프랑스 등 웬만한 선진국은 대부분 농업 선진국이다.
두 기획의 또 다른 공통점은 독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의 외면을 받았다는 점이다. ‘자영업 약탈자들’의 경우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에서 한 차례 성명이 나왔을 뿐이다. 사실상 무법 상태인 창업컨설팅이라는 업태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놓기 위한 입법 움직임도 아직 없다. 거의 명백한 불법과 탈세 의혹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국세청 또한 감감무소식이다.
‘여의도 농부님…’에 대해선 이해충돌 사례로 등장하는 의원들만이 격렬하게 반응할 뿐, 기사가 강조한 문제의식에 대한 반향은 거의 없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이해충돌 문제는 조용히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은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손혜원 의원의 목포 문화재 투자처럼 정쟁으로 불이 붙는 경우에는 기민하게 반응하지만, 공통의 이권을 건드리는 영역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일명 김영란법에서도 국회의원은 빠져 있고, 며칠 전 자유한국당의 육탄 저지 속에 가까스로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서도 국회의원은 기소 대상이 아니다.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국회 및 정부의 냉담한 반응 사이 간극만큼 우리 민주주의에는 빈틈이 존재한다. 그 빈틈을 줄이는 일이 저널리즘의 몫이라고 믿는다.
이재성
탐사2에디터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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