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4 18:47
수정 : 2006.06.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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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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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60년대 말, 록 음악의 저항적 열기를 품고 미국의 젊은이들은 외쳤다. ‘서른 살 넘은 사람을 믿지 말라’, ‘서른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고 싶다.’ 당대의 로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이른바 3J는 구호대로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이승을 버렸다. 같은 시기, 정확하게는 1969년 일본 도쿄대 내 야스다 강당은 극좌파 전공투 학생들에게 점거되어 해방구로 선포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적’이라고 일컫던 극우파 작가 미시마 유키오를 초청해 ‘전쟁’의 와중에서 대토론회를 벌였다. 모든 면에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양쪽이었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는 파격적 인식에는 서로 공감했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은 당시 일본 대학생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즈음 서유럽 대부분이 네오마르크시즘으로 무장한 68학생혁명으로 들끓던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 우리도 거리에서 돌을 던지고 해방의 노래를 부르던 학생운동 시절을 뜨겁게, 치열하게, 매우 아프게 맞이했었다.
세월은 흘렀는데 요즘 시중에는 ‘강남좌파’라는 말이 유행한다던가. 먹고살 만하면서, 누리는 혜택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머리로만 진보를 떠받드는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인 모양이다. 비록 강북 후미진 곳에 살고는 있지만, 3J의 록스피릿을, 야스다 해방구를,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을, 또는 안치환의 새 음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눈시울이 시큰한 걸 보면 나 역시 일종의 강남좌파류는 아닌지. 아니 흘러간 시절을 못 잊는 낡은 감상주의자인 것도 같다. 그래 좋다. 강남 어쩌구든 얼치기 센티멘털이든, 조롱을 받더라도 떨치지 못하는 어떤 미련한 순정 같은 게 있는 것이다. 그게 대체 뭐냐고? 그것은 이미 사어가 되어버려 기억하는 이조차 없는 단어. 나는 그 죽어버린 낱말을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요즘 서른 살 먹은 대학생 하나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만학도가 되기까지 백댄서, 인디밴드, 배추장사, 게임업체 사장, 심지어 삐끼(호객꾼) 노릇까지 별별 일을 다 했다는 이력이 어필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인물이다. 유력한 신문방송들이 앞다투어 인터뷰에 나섰다. 자칭 반운동권이라는 그 학생회장의 발언은 이렇다. “돈 벌어야 한다. 학생도 취업이나 복지 등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회에도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긴다.” 이런 소신을 바탕으로 내건 국립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의 공약인즉, 교내에 과자자판기, 정수기, 교통카드 충전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들이었다. 마침내 그는 며칠 전 ‘맹목적이고 구태의연한 이념조직’인 한총련 탈퇴를 선언했고 각급 신문들은 사설로까지 다루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아, 나는 너무 늙은 모양이다. 세상에는 과자나 정수기보다 조금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을 어찌 하겠는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돈벌이를 해놓고서 여유로 하는 것이 아니란 말도 어찌 감히! 누군가 대학시절이란 관념과 사유의 방황기이고 순정한 정의감에 불타는 시기가 아니겠냐고 외친다면 아마도 개그콘서트장의 폭소가 와르르 터질 것만 같다. 적어도 서울대 총학생회 내에서는. 그러니 그저 국으로 가만있어야겠는데 왜 자꾸 죽은 옛 단어 하나가 떠올라 그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일까. 서른 살, 기성인이 되기 전에 차라리 죽고 싶었고, 세상의 위선에 맞서 난폭한 해방구라도 만들던 혈기. 역사는 그 바보들의 열망을 일컬어 이렇게 표현했다. ‘이상주의.’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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