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8 18:45
수정 : 2006.06.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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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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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사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인구 고령화의 문제는 후자에 가깝다. 지금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는 것은 1960년대에 한 부부가 네댓씩 자녀를 낳다가 70년대 이후 갑자기 한둘로 줄여 낳았던 것이 이제 인구 구성의 세대간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출산율을 기를 쓰고 올려본들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시기를 단 일 년이라도 늦추기는 어렵다. 인구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경로라는 의미에서 ‘이미 진행된 미래’라는 수사가 어울린다.
인구 고령화에 대한 정부의 고민은 대통령이 위원장이 되는 위원회를 만들고,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만들고, 이 문제를 노사정과 사회단체가 함께하는 연석회의의 주요 의제로 가져가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위원회든 기본계획이든 연석회의든, 이 모든 노력들은 한결같이 저출산과 고령화를 늘 하나로 묶어놓고 접근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왜 늘 함께 고민되고 있을까?
처음에 참여정부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구도를 짜는 것을 보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유아에서 노인까지 사회보장제의 틀을 정비할 계기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내심 반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워낙 그런 깊은 의도는 없었던 것 같고, 출산장려 정책에만 점점 더 큰 방점이 찍히는 모습이다. 애초에 저출산과 고령화를 하나로 묶어서 접근한 것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고령화 문제에 근원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출산율을 높이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는 30~40년 뒤에는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인구의 고령화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출산장려 정책으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 출산수당이나 불임부부 지원에 정부의 인력과 예산이 과다하게 배정되고 낙태 반대운동이 독려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개발독재 시절의 산아제한 정책을 거울로 비춰보는 것 같아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젊은이의 수는 적고 노인의 수는 많은 사회로 급속히 이동해 가고 있다고 할 때 필요한 준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생계가 어렵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아질텐데 이들을 어떻게 부양할지 준비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어서는 안 되겠는데 그럼 누가 일을 더 해야겠는가 하는 고민에서, 여성인력이 사회적 노동에 투입될 수 있도록 돌봄노동의 짐을 나누어지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노동력 인구의 평균 연령이 빠르게 증가하게 될텐데, 이것이 생산현장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이 밖에도 할일들이 산적한데,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는 정책적 노력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니 차라리 ‘저출산’과 ‘고령화’를 따로 떼어놓고 접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정책은 출산장려 정책에 집중하고 있으면서, 고령화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인구 고령화에 대한 대응이 될 수는 없으며, 고령화 대책은 출산율이 얼마나 올라가든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늙어간다고 한다. 이 문제는 아이를 적게 낳아서 생긴 문제이지만, 아이를 더 낳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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