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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4 20:56 수정 : 2006.06.09 16:15

김갑수 문화평론가

세상읽기

라틴어 엑스테르미노, ‘경계 너머로 쫓아내다, 세상으로부터 추방하다’라는 단어가 떠오를 판이다. 수도권 시, 군, 구청장의 한나라당 승률이 92%라니 말이다. 웬만해야 다각적인 설명이 가능한 건데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란 게 아예 성립되질 않는다.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적 엑스테르미노인가. 그나마 나오는 논박이라야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이라기보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심판한 것이라는 말 비틀기성 분석 정도다.

집권 이래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한결같이 말해왔다. ‘노무현적 가치’에 주목해 달라고. 그 가치의 핵심은 탈권력을 통한 사회혁신, 시민사회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가치는 생존 앞에 무력했다. 경제상황이 모든 것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내수경기가 활황이었다면 집권당의 득표수가 상대당에 무려 602만표나 뒤지는 만화 같은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국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 먼저 자신의 정치적 자세를 밝히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1987년, 최초로 정상적인 선거가 시작된 이래 나는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투표를 해왔다. 요즘의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유사한 심정일 텐데, 기성질서에 대한 반감과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가 야당 지지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뛰어넘어 무려 두 번이나 소수파 지지 세력이 집권하는 체험을 하게 됐다.

결과는 꽤 흡족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와 샴페인을 나누는 장면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누구도 외생변수가 아닌, 남북의 직접적인 군사대결 국면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안기부의 공포를 잊게 되었다. 이른바 5대 통치기관의 무도한 권력남용과 전횡이 일상적이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다른 나라로 재탄생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느덧 흔들림의 시절이다. 무게 추가 급격히 정반대 방향으로 쏠려버렸다. 무얼 그다지도 잘못했는지, 일일이 그 이유를 찾아 쟁론하기가 버겁다. 산업화, 민주화 단계를 지나 지금은 너무도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필요한 국면에 이른 탓이다. ‘아마추어 정권의 코드정치로 경제와 사회기강을 망쳐버렸다’는 식의 비난은 억하심정이 밴 선동성 막말에 지나지 않는다. 노회한 프로 정권의 성장드라이브로 사회 양극화가 고착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심정은 세 갈래로 나뉜다. 먼저 한나라당을 다시 보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스펙트럼이 너무도 광범위한 일종의 연합체 성격을 갖고 있다. 당내 헤게모니에 따라 무참한 반동의 시대가 올 수도 있고, 온건한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다. 어쨌든 지지와 반대 여부를 떠나 한나라당은 사회 제세력 모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국가 중심축으로 서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에 대해 걸었던 기대는 이제 아쉽게도 거두어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개개인의 공적인 바람을 특정한 정당에 의탁하는 것이 합리적일 뿐더러 절차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지만 흔히 ‘닫힌 니네당’이라고 반대파들이 모욕하던 그 당의 동력은 이제 소실됐다. 앞으로 남은 집권 기간에 허울뿐인 정당 기득권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가혹한 철퇴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이른바 ‘카터 효과’를 말하고 싶다. 집권 내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인기가 없었지만 선의에서 출발했던 그의 주요 인권정책, 특히 군사정책은 후대에 크게 재평가되었다. ‘노무현적 가치’는 그의 소망이라기보다 역사의 소명이라고 나는 믿는다.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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