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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5 23:21 수정 : 2006.06.15 23:21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세상읽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끝났다. 앞으로 여러 차례 협상이 남아 있지만 어쨌든 협상은 궤도에 오른 셈이다. 선거 참패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는 원정시위대쯤의 저항이야 가볍게 무시하고 협상을 밀어붙일 모양이다. 협정이 내포한 문제점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는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진영이 가져야 할 전략과 전술을 살펴보자.

첫째로, 협정 반대운동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협정으로 향하는 열차를 정지시킬 것인지, 속도를 늦출 것인지, 아니면 궤도를 수정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정지시키려 한다면 진보진영이 과연 그런 역량을 갖고 있는지, 지연시키려 한다면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궤도를 수정하려 한다면 지켜야 할 마지노선과 꼭 얻어내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어떤 목표를 선택하든 개방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개혁과 개방을 통해 고도성장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문제는 개방의 방식이다. 조선조 말기의 식민지화나 1997년의 외환위기는 내부개혁 없이 갑작스레 대외개방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닌가. 득보다 실이 큰 개방을 막자는 것이 목표임을 밝혀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둘째로, 반대운동의 수단을 혁신해야 한다. 조직력과 논리에서 추진세력을 능가하지 않고선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협정 반대는 모처럼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결집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동력은 예전 같지 않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부패, 일부 시민운동의 일탈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독재투쟁 때처럼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지혜와 유연성이 필요하다.

조직력 면에선 직접적 이해 당사자들을 힘 있게 묶어세움과 동시에 동조세력을 적극 규합해야 한다. 지지세력에 등 돌리기로 작심한 대통령은 접어두더라도 여야 의원을 집중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차기 대선후보감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논리 면에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추진세력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격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협정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일반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논리를 구사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실현가능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안 없는 비판은 변화에 대한 맹목적 거부나 집단이기주의로 비치기 쉽다. 정부가 협정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자칫하면 미국식 시스템의 나쁜 점만 수입하는 길일 가능성이 크고, 미국식의 장점과 북유럽식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또 미국의 힘으로 경제를 구조조정하려는 것은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맥상통함을 밝히고 사회적 대타협에 의한 새로운 구조조정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협상은 아시아를 경시하고 미국에 치우치는 탈아론(脫亞論)에 입각해 있다. 진보진영은 일본, 중국,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를 대미관계와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진보진영은 역량에 걸맞은 목표를 설정하고, 조직력과 논리에서 정부를 제압하며,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국민을 끌어가야 한다. 지금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와 더불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어쩌면 진보진영이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지 모른다. 실력을 제대로 갖추고 이를 올바르게 처리해 간다면 다시 희망세력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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