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5 21:37
수정 : 2006.06.2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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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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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문 용어는 식자들이 자신들의 논의를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진입장벽을 치는 방편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도 모르게 경제학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어떤 주장을 펴면 그 근거를 따지는 논쟁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론을 수용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낀다.
이런 약점을 아는 기성 언론들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성매매처벌법’이라는 보고서가 나오자 ‘섣부른 명분 비웃는 후유증’ 운운하면서, 마치 이 보고서가 법 시행 후 성매매가 증가했다는 경험적 연구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 봐라’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빌려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단속과 처벌이 집창촌이라는 기존 성매매 방식의 거래비용을 높이면서 인터넷 직거래 같은 신종 거래방식이 확산되는데, 이런 신종 성산업은 통제하기가 어렵고 가격은 싸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성매매 단속을 비판하는 가장 전형적인 ‘풍선효과’ 논리다. ‘위험부담’이나 ‘접근성’ 등의 말들을 ‘가격’이라는 용어로 대체했을 뿐이다.
이 보고서는 또 성매매를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은 단속과 처벌이 아니라 가격을 올리는 것이고, 가격을 올리려면 시장을 독점적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수로 성매매 시장을 독점시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공창제를 하든가 허가제를 도입하자는 말인가 싶은데, 그런 건 또 아니라고 한다. 결국 이 주장은 집창촌 성매매의 가격을 인터넷 직거래나 남성 휴게텔 같은 신종 성산업보다는 낮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성매매 수요를 억제할 정도만큼 비싸게 유지시키라는 제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원히 풀 수 없는 난해한 고차방정식이다.
성매매의 풍선효과 논리는 어느 사회에든 일정한 정도로 성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한 가지 거래방식을 금지하면 다른 거래방식이 개발될 것이며, 매매 자체를 금지하면 강탈이 등장할 것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거래방식 중에 어떤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 되느냐는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가격은 감옥에 갈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간의 성욕은 동서고금에 걸쳐 일정하다고 치자. 성행위가 교환되는 방식을 ‘시장’에 유추하여 설명하는 경제학적 관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성이 교환되는 방식이 매매와 강탈, 이 두 가지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전제이다. 성애에 기반한 성행위의 교환은 왜 시장의 유추에서 제외시키는가? 물론 성애에 기반한 성교환은 혼인제도 안에서 보호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다시 나뉠 수 있다. 그래서 일부일처제도가 위선이라고 말하는 건 차라리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르면서도 금전적 거래는 동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이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은 쏙 빼고, 여러 가지 방식의 매매와 강탈 중에서만 이리저리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 건 경제학적 관점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성노동은 아동노동이나 노예노동과 마찬가지로 인신매매에 해당하므로 금전적 거래를 허용할 수 없다고 본다. 성폭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매매금지법이나 성폭력금지법은 그 자체로 이런 종류의 성교환 가격을 높이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사거나 뺏거나 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이성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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