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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6 18:52 수정 : 2006.07.06 18:52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세상읽기

황우석씨 줄기세포 연구 추문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며칠이 머다고 큰 사건이 터지는 나라라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데로 옮겨간 지 오래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은 이제야말로 온나라, 아니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태의 교훈을 차분히 음미할 때다. 과학계, 언론, 민주주의, 근대적 주체 등등 따져볼 문제가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혹시 경제학적으로도 시사를 주는 게 없을까.

〈문화방송〉의 ‘피디수첩’이 의혹을 제기하고 진실이 밝혀져 가는 과정에서 전혀 뜻밖의 현상이 나타났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과 〈서프라이즈〉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공동보조를 취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비슷한 해당 사이트는 평소 수구언론과는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인데, 비이성적 ‘황우석 감싸기’에서는 분간이 곤란하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둘 다 박정희 시대의 천민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공유한 까닭이다. ‘한강의 기적’처럼 난치병 치료의 기적을 기대하고 줄기세포가 가져다준다는 수백조 원에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과학의 궁극 목표가 진실 추구임을 망각하고 연구 업적주의와 황금 만능주의에 빠졌던 셈이다. 극우파 히틀러나 극좌파 스탈린이나 진리를 짓밟은 점에서 그게 그거였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난다.

수구언론은 ‘파이를 늘리는’ 성장을 우선하고 서프라이즈 같은 곳은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를 우선하므로, 패러다임이 서로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의 궁극 목표가 ‘따뜻하고 활기찬 인간관계’라는 점을 망각하면 성장론자와 마찬가지로 분배론자도 무조건 ‘파이를 더 많이 가지려는’ 황금만능주의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서프라이즈가 떠받드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가. 황우석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 미적미적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앞에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판이니 훨씬 어려운 경제문제 처리는 뻔할 뻔자다. 분배를 강조하다 성장을 강조하다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실제론 과거 박정희 시대의 황금만능 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수구언론의 황금만능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니 그들을 이길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하다.

부유층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을 보자. 부유층은 장차 현재보다 세금을 더 내야 마땅하다. 다만 그것은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복지를 충실히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대통령은 중죄를 지은 재벌총수는 감싸고 집값이 오른 부자는 적군처럼 대한다. 한편으론 과학적 진실을 은폐하듯이 경제정의를 무시하고, 다른 한편으론 분별없는 극단적 분배주의자처럼 처신하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투쟁에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대기업 노조는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민주화하고 전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투쟁이 점차 타성에 젖으면서 투쟁의 근본 목적을 상실한 채 돈 몇 푼 더 따내는 게 전부가 되다시피 했다. 이리 되면 재계의 성장론이나 대기업 노조의 분배론이나 오십보백보고 둘의 싸움은 아귀다툼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박정희 정부의 깃발은 성장이었고 반정부 세력의 깃발은 분배였다. 양자는 정반대인 듯싶지만 미워하면서 닮기 쉽다. 이제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비전을 찾을 때가 아닐까. 우리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것은 파이를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라기보다 파이로부터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빌 게이츠 같은 부호가 재산을 사회에 돌리고 대기업 노조가 중소기업 노동자를 배려하는 일은 이럴 때 가능해진다. 황우석 사태를 반성과 도약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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