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4.08 18:07 수정 : 2019.04.08 19:12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며칠 전 지난해 나라살림을 결산하고 재정수지를 발표했다. 통합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GDP)의 1.7%인 31조2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관리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의 0.6%인 10조6천억원 적자에 그쳤다. 그런데 이에 관해 기획재정부는 관리재정수지가 적자이니 여전히 확장적 재정이었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는 대체 어느 나라의 거시경제학인가. 한국은 연금의 역사가 짧아 통합재정수지는 흑자라도 거기서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는 적자가 된다. 관리재정수지가 흑자였던 해는 1990년 이후 고작 3년에 불과하다. 현실의 거시경제에 미치는 효과에는 통합재정수지가 중요하며 국제기구에서는 이를 보고 한국 정부에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요구하곤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수지 흑자는 이전에 비해 더욱 커졌다. 지난해의 통합재정수지 흑자는 2007년 이래 최대였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최소였다. 무려 25조4천억원의 초과세수 덕에 재정수지 흑자가 예산에 비해 국내총생산의 약 1%나 더 늘어나 결과적으로 긴축재정이 되었다. 긴축 경향은 재정충격지수나 경기변동을 조정한 기초재정수지 등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여러 지표가 보여주듯 2018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재정정책이 적절한 경기 대응과 거시경제의 관리에 실패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14%나 줄었고, 예상되는 초과세수를 쓰지 못하고 상반기에 3조8천억원의 미니추경에 그친 것이 아쉬웠다. 혹시 정부·여당이 경기 악화를 선뜻 인정하지 못해서 적극적인 재정확장에 실패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국가채무비율도 계속 높아져 오다가 2016년 이후 증가를 멈췄으니 한국의 재정은 전보다 더 건전해졌다. 게다가 한국 정부의 국가채무 중 대응자산이 없는 순수한 빚인 적자성 채무의 비중은 약 57%이며 정부의 자산을 고려한 순채무비율은 심지어 마이너스다. 국민의 살림살이가 힘겨운데 나라 곳간만 넉넉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지난해 재정은 많이 걷은 세금을 제때 쓰지 못한 이상한 나라의 재정정책이라 부를 만하다. 이는 좋지 못한 경제 성과에 대해서도 상당한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더욱 힘든 것은 총수요를 강조하는 케인스주의를 따라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한 정부에서 긴축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내수를 촉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국외에서 한국 경제에 관해 발표하고 진보적인 거시경제학자들과 토론하면 늘 받는 질문도 그것이었다. 물론 기재부 관료들의 보수성과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사고가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확장적 재정을 위한 청와대의 의지와 정책 역량이 부족하지 않았는지도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외국은 어떨까. 총수요의 둔화로 금리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현실 앞에서 미국의 거시경제학계가 찾은 답도 재정확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경제학계의 긴축 논쟁에서는 이를 강조하는 케인스주의가 대세가 됐다.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였던 블랑샤르는 국채금리가 명목성장률보다 낮은 현실에서는 높은 국가부채도 그 비용과 악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기침체로 인한 장기실업이나 기업의 신기술 투자 정체가 장기적으로 성장을 저해하여 오히려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 적자를 감수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통화기금도 최근 세계적인 경기둔화를 배경으로 우리 정부에 국내총생산의 약 0.5% 규모의 추경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확장적이지만 수출 감소와 경기 부진이 심각하여 대규모 추경과 경기부양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원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할 테니 비판도 크겠지만, 이럴 때 나랏빚을 내지 않으면 언제 낼 것인가. 물론 효과적인 미세먼지 대책이나 산불 피해의 복구, 빈곤 노인을 위한 사회안전망, 노후한 사회기반시설 개선 등 효과적으로 세금을 쓰기 위한 곳을 찾는 노력도 필수적일 것이다.

올 들어 한국 경제는 물가상승률도 급락하여 총수요 확대를 위해 더 확장적인 거시경제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재정건전성에 대한 집착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재정정책의 실패는 지난해로 족할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