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누구든 세월호의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업무 중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접하며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늦게 귀가해 휴대전화로 밤새 방송을 봤다. 마음은 이미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무실 구성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도로 향했다. 참사 현장에서 피해가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소중한 생명들을 살려보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변호사단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안산 와스타디움과 장례식장, 한국방송(KBS)과 청와대 앞을 오가며 피해가족들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안산으로 매일 출근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피해가족들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노란리본을 달지 않았다. 상징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이 벌어졌다. 안산, 인천에서 진도까지, 청와대, 국회에서 세종시 정부청사까지, 그리고 광화문, 시청에서 청운동 길거리까지 피해가족들 곁에 있고자 했다. 권력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귀청을 찢어대고, 결국 누더기로 타협된 법이 만들어졌다. 피해가족들의 국회 농성이 계속되던 몇달간 거의 매일 꿈을 꿨다. 정치인들의 멱살을 잡고 피해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소리치는 꿈, 뭔가 잘못 행동하고 슬그머니 도망가는 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조용한 공간을 찾았지만 그곳에서도 피해가족들과 만나는 꿈. 현실에서는 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희생자들을 모욕한 가해자와 피해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충돌이 우려되어 함께 있었는데 중간에 혼자 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예전에는 슬픈 것을 보면 눈물이 났는데, 그때는 있어서는 안 되었던 모든 것이 슬펐다.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고, 인권단체들이 피해가족들과 함께하게 되고, 안산에서 함께 상주했던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됐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2017년 말 사회적참사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통과 전날, 국회에서 밤을 새우며 다시 피해가족들과 함께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꿈을 꿨다. ‘세월호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어떤 이가 가족들에게 진상규명 없는 굴욕적인 합의를 요구한다. 그와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몸싸움을 벌인다. 결국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꿈에서 깬다.’ 항상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과 판단은 과연 올바른가. 특별법에 의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아직 활동 성과는 미미하다. 이 위원회의 위원 중 하나인 나도 전적으로 그 책임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 관련 활동을 하고 계신 분으로부터 무능력하고 할 일은 하지 않고 세금만 낭비하고 진상규명 한다고 목소리만 높인다는 비판의 메시지를 받았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침몰의 원인과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연관성,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증거의 은폐·조작과 피해가족에 대한 공격 등)을 하나하나 때론 좁혀가며 때론 넓혀가며 좀 더 정리해야 한다. 또 다른 의혹이나 이견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선체조사위 시절 공적 결론을 내지 못했던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결론이 확인되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책임이 있는 자가 책임 회피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선원 구조에 집중하고 선장을 빼돌렸던 해경의 초기 구조와 수사 상황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피해가족들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펼쳤음이 드러나고 있는 기무사, 피해가족을 지켜봤으나 사찰한 것은 아니라며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국가정보원,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많은 부분 위원회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정부의 더욱 강력한 의지와 강제수사권이 뒷받침되어야 할 영역들도 분명 존재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올린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결코 미제의 과거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잃게 하고, 가족 잃은 슬픔과 그에 대한 공감을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공격했던 정부는 결코 두번 다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모두 함께 꿈꾸며 깨어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5년, 꿈을 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우리는 꿈을 꾼다. 처절하게 행복한 꿈을 꾼다.
칼럼 |
[세상 읽기] 세월호 참사 5년, 꿈을 꾼다 /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누구든 세월호의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업무 중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접하며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늦게 귀가해 휴대전화로 밤새 방송을 봤다. 마음은 이미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무실 구성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도로 향했다. 참사 현장에서 피해가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소중한 생명들을 살려보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변호사단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안산 와스타디움과 장례식장, 한국방송(KBS)과 청와대 앞을 오가며 피해가족들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안산으로 매일 출근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피해가족들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노란리본을 달지 않았다. 상징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이 벌어졌다. 안산, 인천에서 진도까지, 청와대, 국회에서 세종시 정부청사까지, 그리고 광화문, 시청에서 청운동 길거리까지 피해가족들 곁에 있고자 했다. 권력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귀청을 찢어대고, 결국 누더기로 타협된 법이 만들어졌다. 피해가족들의 국회 농성이 계속되던 몇달간 거의 매일 꿈을 꿨다. 정치인들의 멱살을 잡고 피해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소리치는 꿈, 뭔가 잘못 행동하고 슬그머니 도망가는 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조용한 공간을 찾았지만 그곳에서도 피해가족들과 만나는 꿈. 현실에서는 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희생자들을 모욕한 가해자와 피해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충돌이 우려되어 함께 있었는데 중간에 혼자 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예전에는 슬픈 것을 보면 눈물이 났는데, 그때는 있어서는 안 되었던 모든 것이 슬펐다.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고, 인권단체들이 피해가족들과 함께하게 되고, 안산에서 함께 상주했던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됐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2017년 말 사회적참사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통과 전날, 국회에서 밤을 새우며 다시 피해가족들과 함께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꿈을 꿨다. ‘세월호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어떤 이가 가족들에게 진상규명 없는 굴욕적인 합의를 요구한다. 그와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몸싸움을 벌인다. 결국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꿈에서 깬다.’ 항상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과 판단은 과연 올바른가. 특별법에 의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아직 활동 성과는 미미하다. 이 위원회의 위원 중 하나인 나도 전적으로 그 책임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 관련 활동을 하고 계신 분으로부터 무능력하고 할 일은 하지 않고 세금만 낭비하고 진상규명 한다고 목소리만 높인다는 비판의 메시지를 받았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침몰의 원인과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연관성,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증거의 은폐·조작과 피해가족에 대한 공격 등)을 하나하나 때론 좁혀가며 때론 넓혀가며 좀 더 정리해야 한다. 또 다른 의혹이나 이견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선체조사위 시절 공적 결론을 내지 못했던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결론이 확인되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책임이 있는 자가 책임 회피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선원 구조에 집중하고 선장을 빼돌렸던 해경의 초기 구조와 수사 상황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피해가족들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펼쳤음이 드러나고 있는 기무사, 피해가족을 지켜봤으나 사찰한 것은 아니라며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국가정보원,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많은 부분 위원회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정부의 더욱 강력한 의지와 강제수사권이 뒷받침되어야 할 영역들도 분명 존재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올린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결코 미제의 과거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잃게 하고, 가족 잃은 슬픔과 그에 대한 공감을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공격했던 정부는 결코 두번 다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모두 함께 꿈꾸며 깨어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5년, 꿈을 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우리는 꿈을 꾼다. 처절하게 행복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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