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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6 14:42 수정 : 2019.04.16 20:20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1차 대전이 끝나고 단풍이 평화롭게 짙어가던 1919년 늦가을 워싱턴, 루스벨트 해군 차관은 급한 호출을 받는다. 국제회의가 곧 열리는데 회의 준비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해군이 나서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다급했던지라, 자초지종도 묻지 못하고 서둘러 도왔다. 거기서 그는 ‘기이한’ 것을 보았다. 정부 대표 옆에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가 나란히 앉아 노동권 보장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 것은 바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첫 총회였다. “1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으로 알려진 국제노동협약 제1호가 여기서 탄생했다.

약 20년 뒤, 루스벨트는 대통령이 되어 국제노동기구 총회를 찾아 기조연설을 한다. 그는 그때의 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거친 꿈”(wild dream)이었다고 술회하면서,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된 기구를 축하했다. 내친김에 그는 아내 엘리너와 함께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을 주도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선언문이다. 이 짧은 선언적 문장은 화두이자 영감이고 힘이었다.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협상권을 보장하는 국제노동협약들(87호와 98호)이 연이어 채택되었다. “취직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노조 가입”이라던 루스벨트는 이런 ‘꿈같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국제노동기구의 모토는 “평화를 갈구한다면 정의를 가꾸어라”다. 세상만사가 일터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팎으로 내미는 총구를 막으려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일터의 정의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때로 연약한 갈대 같다는 점을 알아차린 국제노동기구 창설자들은 이 모토를 탄탄한 돌에 새겨 건물 밑에 부적처럼 넣어두었다.

2차 대전 이후에 신생독립국이 민주주의와 개발의 길을 모색할 때, 국제노동기구는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민주주의와 ‘고용을 통한 빈곤 타파’와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개발전략을 내세웠다. 노동소득 상승, 누진세, 토지개혁, 독점 규제 없이는 지속적인 고용 창출과 빈곤 축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196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창립 50주년에 받은 큰 선물이었다.

큰 선물 뒤에는 큰 시련이 뒤따랐다. 특히 1980년대 들어 보수정치가 득세하면서 삼자주의와 국제노동기준에 대한 도전이 커졌다. 협애한 경제적 편익분석의 잣대를 노동보호정책에 적용하려 했고, 노동기본권도 그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도 한몫했다. 국제노동기구를 냉전시대의 자본주의적 ‘안전판’으로 보았던 시각에서는 ‘국제노동기준이 없는 자본주의’가 가능해 보였다. 바야흐로 ‘일터의 정의’가 ‘주판알’로 대체되는 듯했다.

대응전략은 쉽지 않았다. 오랜 논란 끝에,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지켜내자는 전략이 정해졌다. 200여개에 이르는 국제협약 중에 핵심적인 8가지만 추려내었다. 정치 상황이 어떻든,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만 모았다. 이것이 1990년대 후반에 지정된 ‘핵심협약’이다. 아동노동과 강제노동의 금지. 각종 차별의 금지. 그리고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권 보장. 핵심협약은 모든 회원국이 비준해야 하는 보편적 비준 대상이다. ‘숙제’를 줄였으니, 모두 빼먹지 말고 해오자는 다짐이었다.

성과는 적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핵심협약을 수용했다. 80%에 가까운 나라들은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했다. 하지만 한국은 다시 예외다. 핵심협약 4가지만 비준했는데, 단결권과 단체협상권에 관련된 ‘알짜배기’는 빠졌다. 노사정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관련 권고안을 수없이 내었고, 한국 정부도 국제사회에 이런저런 약속을 했다. ‘약속된’ 꿈이었는데, 아직 기약 없다.

한국 노동권의 시간은 중층적이다. 노동권 보장이 남부럽지 않은 노조도 있고, 억울한 일에 목소리를 합쳐 따져보는 것마저도 ‘꿈’ 같은 사람들도 도처에 있다. 경영계도 대기업 노조의 힘에 볼멘소리를 하면서 비정규직을 더 챙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사정을 살피는 첫걸음으로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데는 아직까지 모른 척이다.

그래서 100년이 지나도 노동권은 많은 이에게 “거친 꿈”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꿈이다. 루스벨트는 오늘도 서울 거리에서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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