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교수·경제학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 다만 제조업 고용 부진이 아프다. 글로벌 분업체계와 산업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겠지만 기술 변화라는 구조적 원인도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취업자 수는 1992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절대 규모로 100만명 감소했는데, 이 기간 중 산업용 로봇밀집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해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평균보다 8배 높다. 산업혁명 이래 기술 변화로 노동이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우려로 그쳤다. 기술은 노동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보완하거나 창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생산성과 고용 총량은 동시에 증가했고 불평등도 일정 수준에서 통제됐다. 적어도 1980년대 이전에 실업률과 노동분배율은 역사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해왔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자동화와 빅데이터 기반 디지털 플랫폼의 시대에도 이런 패턴이 반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소수의 기술 귀족이 다수의 디지털 농노를 지배하는 ‘기술적 중세’(techno-feudal)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다르다고 보는 몇가지 논거를 보자. 첫째, 에이아이 자동화는 인간 뇌의 일부 기능을 대체한다. 고임금 지적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열렸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면 자본주의는 당연히 고임금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에이아이가 인간을 도와 협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스마트공장에서도 협동로봇은 인간을 도와 작업한다. 에이아이 지원을 받는 의사나 교사는 맞춤형 치료와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인간과 이윤 추구 자본주의는 ‘인간+에이아이 1’을 대체하는 에이아이 2를 만들어낼 것이다. 둘째, 시장 거래를 중개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엄청난 힘을 부여하지만 긱 워크와 크라우드 워크 등 디지털 플랫폼 노동을 확산시킨다. 대부분 낮은 수입의 불안정 노동이다. 셋째, 패턴이 유사해도 속도가 다르다. 교육이 기술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에이아이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확산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오히려 생산성이 정체되는 ‘생산성의 역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고임금-고생산성 일자리는 적게 늘고, 저임금-저생산성 일자리는 많이 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분배율은 역사적 추세를 벗어나 낮아지고 있고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마스터 알고리즘>의 저자 페드루 도밍구스는 말한다. “사람들은 에이아이가 너무 영리해져 앞으로 에이아이가 세계를 지배할 것을 걱정해. 그런데 멍청한 에이아이가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 기술이 노동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검토하고 준비하기도 전에 에이아이와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기술 변화에 대한 미래 사회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에이아이, 빅데이터, 수소경제의 혁신성장 플랜에는 노동, 인간, 사회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소사이어티 5.0은 사회문제 해결에 기술을 사용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래 전략의 부재는 현실 파악의 부실에서 시작된다. 도처에 플랫폼 노동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의 노동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 확산이라는 ‘예상과 통계의 충돌’이다. 빅데이터 시대에 정책결정자가 오히려 정보의 부족에 직면하는 역설이다. 현실 변화를 정부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실업률이나 국민소득 지표도 없었을 때, 쿠즈네츠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국민계정 통계를 만들어냈고 루스벨트는 이를 근거로 대불황의 종식을 선언하였다. 우리도 미국 컴퓨터경영학자 에릭 브리뇰프슨이 제안한 ‘일자리 빅데이터-에이아이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해보자. 스마트공장과 플랫폼 기업들은 막대한 일자리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궁극의 공공재다. 우리도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에 기초하여 일자리에 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에이아이 자동화와 플랫폼 노동의 사회적 효과를 측정, 분석, 예측해보자. 에이아이와 디지털 플랫폼화가 제공하는 기술적 이점을 활용하여 에이아이와 플랫폼이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보자. 물론 에이아이와 빅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믿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다. 정치적 의사결정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고 마지막 버튼은 결국 인간이 누를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와 사회 계약으로 ‘기술과 사회의 미래 전략’을 구상해보자. 이미 늦었지만 많이 늦은 것은 아니다.
칼럼 |
[세상읽기] 기술과 노동, 이번에는 다른가 / 전병유 |
한신대 교수·경제학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 다만 제조업 고용 부진이 아프다. 글로벌 분업체계와 산업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겠지만 기술 변화라는 구조적 원인도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취업자 수는 1992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절대 규모로 100만명 감소했는데, 이 기간 중 산업용 로봇밀집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해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평균보다 8배 높다. 산업혁명 이래 기술 변화로 노동이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우려로 그쳤다. 기술은 노동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보완하거나 창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생산성과 고용 총량은 동시에 증가했고 불평등도 일정 수준에서 통제됐다. 적어도 1980년대 이전에 실업률과 노동분배율은 역사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해왔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자동화와 빅데이터 기반 디지털 플랫폼의 시대에도 이런 패턴이 반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소수의 기술 귀족이 다수의 디지털 농노를 지배하는 ‘기술적 중세’(techno-feudal)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다르다고 보는 몇가지 논거를 보자. 첫째, 에이아이 자동화는 인간 뇌의 일부 기능을 대체한다. 고임금 지적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열렸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면 자본주의는 당연히 고임금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에이아이가 인간을 도와 협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스마트공장에서도 협동로봇은 인간을 도와 작업한다. 에이아이 지원을 받는 의사나 교사는 맞춤형 치료와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인간과 이윤 추구 자본주의는 ‘인간+에이아이 1’을 대체하는 에이아이 2를 만들어낼 것이다. 둘째, 시장 거래를 중개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엄청난 힘을 부여하지만 긱 워크와 크라우드 워크 등 디지털 플랫폼 노동을 확산시킨다. 대부분 낮은 수입의 불안정 노동이다. 셋째, 패턴이 유사해도 속도가 다르다. 교육이 기술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에이아이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확산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오히려 생산성이 정체되는 ‘생산성의 역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고임금-고생산성 일자리는 적게 늘고, 저임금-저생산성 일자리는 많이 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분배율은 역사적 추세를 벗어나 낮아지고 있고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마스터 알고리즘>의 저자 페드루 도밍구스는 말한다. “사람들은 에이아이가 너무 영리해져 앞으로 에이아이가 세계를 지배할 것을 걱정해. 그런데 멍청한 에이아이가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 기술이 노동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검토하고 준비하기도 전에 에이아이와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기술 변화에 대한 미래 사회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에이아이, 빅데이터, 수소경제의 혁신성장 플랜에는 노동, 인간, 사회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소사이어티 5.0은 사회문제 해결에 기술을 사용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래 전략의 부재는 현실 파악의 부실에서 시작된다. 도처에 플랫폼 노동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의 노동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 확산이라는 ‘예상과 통계의 충돌’이다. 빅데이터 시대에 정책결정자가 오히려 정보의 부족에 직면하는 역설이다. 현실 변화를 정부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실업률이나 국민소득 지표도 없었을 때, 쿠즈네츠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국민계정 통계를 만들어냈고 루스벨트는 이를 근거로 대불황의 종식을 선언하였다. 우리도 미국 컴퓨터경영학자 에릭 브리뇰프슨이 제안한 ‘일자리 빅데이터-에이아이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해보자. 스마트공장과 플랫폼 기업들은 막대한 일자리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궁극의 공공재다. 우리도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에 기초하여 일자리에 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에이아이 자동화와 플랫폼 노동의 사회적 효과를 측정, 분석, 예측해보자. 에이아이와 디지털 플랫폼화가 제공하는 기술적 이점을 활용하여 에이아이와 플랫폼이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보자. 물론 에이아이와 빅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믿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다. 정치적 의사결정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고 마지막 버튼은 결국 인간이 누를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와 사회 계약으로 ‘기술과 사회의 미래 전략’을 구상해보자. 이미 늦었지만 많이 늦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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