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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5 16:37 수정 : 2019.04.26 09:33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이 다가온다. 새 정부가 내세운 경제정책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단연 소득주도성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정책의 동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은 지난 2년 동안 나올 만큼 다 나왔을 정도로 많았다. 잘해야 단기부양책에 불과하고 성장정책이라기보다 분배정책이며, 경제정책이 아니라 인권정책에 가깝다는 평까지 들었다.

필자는 새 정부 출범 뒤 열린 어느 세미나에서 자칫 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에 의해 덮어쓰기 당할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성장이론 경연대회가 열린다면 당연히 혁신성장이 금메달을 받을 것이다. 경제학자나 정책 담당자들이 무난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하기 위해 혁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누가 그걸 부정할 수 있겠는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는 개혁, 노무현 정부에서는 혁신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개혁과 혁신이라 말이 하도 많이 쓰여서 오히려 진부했는지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거창하게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의 화두를 꺼냈지만 취임하자마자 바로 빼버렸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혁신성장과 포용적 복지 정도로 정리된 듯하고, 소득주도성장은 슬슬 뒤로 물러나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이제 잘 쓰지도 않는다. 물론 정책의 진정성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5년 단임 정부의 한계는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주류 경제학에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스티글리츠, 크루그먼, 서머스 등 미국의 저명한 주류 케인스주의자들은 늘 소득주도성장이 지향하는 바를 주장한다. 즉, 분배와 성장의 조화 및 유효수요 확대의 중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주장의 강도가 더 세졌다. 이런 대가들이 혁신의 중요성을 몰라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크게 미시 경제학과 거시 경제학으로 구분된다. 개별 경제주체들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미국에서는 왜 대공황과 금융위기 같은 재앙이 발생했고, 일본 사람들은 어느 때나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는데 왜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침체가 발생했을까. 미시 경제학만으로는 이러한 물음에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혁신이 부족해서 위기를 맞은 것일까.

혁신을 통해 이전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 즉 소득을 창출하더라도 그것이 지출 성향이 낮은 개인이나 기업에 머물러 오래 고여 있거나, 아니면 공급이 고정되어 있는 부동산으로 쏠리게 되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점점 부족해진다. 수요가 부진하면 투자와 혁신의 유인도 약해지게 된다. 수출경쟁력이 있는 재벌 대기업이 혁신 제품으로 아무리 돈을 벌어도 상당 부분을 지배구조 강화와 자산 불리기를 위해 비축한다면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속도는 생각보다 더뎌진다. 혁신 능력도 중요하지만 소득의 순환에 문제가 없어야 순조로운 성장 경로를 갈 수 있다.

지난 2년간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을 조화시키지 않은 채 서둘러 추진되었다. 주로 노동정책에 치중한 인상을 주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진보적인 방향이든 보수적인 방향이든 경제구조 개혁에는 반드시 확장적인 거시 정책이 따라가야 한다. 예를 들어 임금 인상과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하는 미시 정책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수요의 감소를 상쇄할 만한 확장적인 거시 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인구구조 변화라는 역풍까지 마주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일차적으로 수요 부족을 유발하고 이차적으로는 공급 능력을 위축시킨다. 특히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속도가 20년 전의 일본보다 더 빠르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확장적인 거시 경제 정책이 없는 소득주도성장을 상상하기 어렵다.

혁신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안주하고 재정건전성과 물가안정이라는 논리 뒤에 숨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우리 경제는 구조적 침체에 빠져들지 모른다. 장기 침체 예방을 위해서라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큰 축은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시하는 정도의 정책 때문에 성장이 안 되는 것이라는 비판은 너무 가볍고 피상적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성장률이 지금보다 더 급하게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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