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자네가 출마를 준비한다길래 동창회 쪽으로 좀 알아봤네. 사상은 왼쪽이지만 제법 인물이라더군. 그렇다면 사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아무렴 우리 동창이 당선돼야지. 우리가 지역에서 꽤 힘이 있네. 적극 도와줌세.” 그는 한국에서 단결력 최고를 자랑한다는 대학 출신이었다.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면서 막 본격적인 정치의 첫걸음을 디디려던 순간, 생각지도 않게 지역의 동창회 책임자쯤 되는 인사가 그를 찾아와 조건 없는 선거운동을 제안했다고 한다. 선거를 한번이라도 치러본 사람이라면 이 제안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 것이라고, 조금은 전율하듯 그가 얘기했던 것 같다. 짧지만 치열한 고민 후에 그는 대략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배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명색이 진보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동창회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인사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고. 사실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 정치를 하겠다는 인간이 단결력 1위 동창회의 도움을 거절하다니, 차려준 밥상을 걷어찬 격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에게 들은 경험담이다. 시기를 더듬어보니 출마를 준비하다 사면복권 불발로 끝내 포기했던 1996년 총선의 일인 듯하다. 그 직후쯤 내가 속한 공부 모임에서 그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고, 뒤풀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로 기억한다. 새겨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기억은 전혀 없는데, 이 일화만 또렷하다. 그로부터 3년쯤 지난 1999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정기구독하던 잡지에 딸려온 별책부록을 열심히 뒤적이고 있었다. 부록은 무려 1000명에 달하는 인물들의 경력과 근황을 사진과 함께 짤막하게 담고 있었다. 중요 인물 스무명쯤은 따로 페이지를 할애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읽는다기보다는 검색했다는 게 맞다. 재미도 없는 인명록을 뒤적인 이유는 딱 하나, 내가 아는 누가 나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아는 얼굴이 나오면 흐뭇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도 반가웠다. 그리고 묘했다. 당대의 대표적 진보월간지 <말>이 펴낸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 리더>라는 책 이야기다. 책은 적어도 절반은 맞았다. 책이 선정한 인물들 중 상당수가 오늘날 ‘리더’가 되어 있다. 나머지 절반은 어떨까? 그들은 과연 희망이 되었을까? 글쎄다. 내 마음은 그 별책부록의 제목을 보면서부터 불길한 예감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몇몇 인물이 우연히 만들어낸 386이라는 말을 촉 좋은 보수언론들이 한창 유행어로 밀던 무렵이었다. 진보언론이 맞장구치며 이 말에 시대의 상징성을 실었다. 말이 입에서 회자되자 1980년대를 살거나 죽었던 수많은 필부필녀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가, 60년대에 태어나고 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한 인물들의 영웅서사가 되었다. 맞다, 이런 비판은 그동안 충분히 많았고 이제는 식상하다. 불편한 건 따로 있다. 지금도 불현듯 떠오르는, 그 인명록을 열심히 뒤적이던 내 모습이다. 문제 많은 기획이군, 제법 의식 있는 체하면서 나는 그 인명록을 끝까지 들췄던 것이다. 잘나가는 지인이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었으리라.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인지상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지상정일지언정 그것이 현실적인 욕망이 될 수 있는 자와 그저 몽상인 자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바로 이런 것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자 이제는 586세대, 또는 그냥 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정부와 의회, 지방자치단체의 고위공직에 가득하다. 기업과 시민사회의 높은 자리에도 넘쳐난다. 개각 소식이나 기업 인사 소식에 혹여 아는 이름이라도 나올까 내 귀는 쫑긋거린다. 흔들어댈 꼬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기득권 여부를 검증하는 좋은 방법은 뉴스를 듣는 귀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4464일의 투쟁 끝에 복직한 콜텍 노동자들의 소식과 개각 소식 중 어느 쪽에 귀가 잘 반응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나처럼 개각 소식 따위에 귀가 한껏 쫑긋거리는 86세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우리는 기득권자가 되었거나 최소한 기득권 마인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비판을 감수하거나 책임을 지거나.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기득권에게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칼럼 |
[세상 읽기] 기득권이 된 86세대에게 남은 윤리 / 조형근 |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자네가 출마를 준비한다길래 동창회 쪽으로 좀 알아봤네. 사상은 왼쪽이지만 제법 인물이라더군. 그렇다면 사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아무렴 우리 동창이 당선돼야지. 우리가 지역에서 꽤 힘이 있네. 적극 도와줌세.” 그는 한국에서 단결력 최고를 자랑한다는 대학 출신이었다.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면서 막 본격적인 정치의 첫걸음을 디디려던 순간, 생각지도 않게 지역의 동창회 책임자쯤 되는 인사가 그를 찾아와 조건 없는 선거운동을 제안했다고 한다. 선거를 한번이라도 치러본 사람이라면 이 제안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 것이라고, 조금은 전율하듯 그가 얘기했던 것 같다. 짧지만 치열한 고민 후에 그는 대략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배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명색이 진보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동창회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인사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고. 사실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 정치를 하겠다는 인간이 단결력 1위 동창회의 도움을 거절하다니, 차려준 밥상을 걷어찬 격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에게 들은 경험담이다. 시기를 더듬어보니 출마를 준비하다 사면복권 불발로 끝내 포기했던 1996년 총선의 일인 듯하다. 그 직후쯤 내가 속한 공부 모임에서 그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고, 뒤풀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로 기억한다. 새겨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기억은 전혀 없는데, 이 일화만 또렷하다. 그로부터 3년쯤 지난 1999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정기구독하던 잡지에 딸려온 별책부록을 열심히 뒤적이고 있었다. 부록은 무려 1000명에 달하는 인물들의 경력과 근황을 사진과 함께 짤막하게 담고 있었다. 중요 인물 스무명쯤은 따로 페이지를 할애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읽는다기보다는 검색했다는 게 맞다. 재미도 없는 인명록을 뒤적인 이유는 딱 하나, 내가 아는 누가 나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아는 얼굴이 나오면 흐뭇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도 반가웠다. 그리고 묘했다. 당대의 대표적 진보월간지 <말>이 펴낸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 리더>라는 책 이야기다. 책은 적어도 절반은 맞았다. 책이 선정한 인물들 중 상당수가 오늘날 ‘리더’가 되어 있다. 나머지 절반은 어떨까? 그들은 과연 희망이 되었을까? 글쎄다. 내 마음은 그 별책부록의 제목을 보면서부터 불길한 예감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몇몇 인물이 우연히 만들어낸 386이라는 말을 촉 좋은 보수언론들이 한창 유행어로 밀던 무렵이었다. 진보언론이 맞장구치며 이 말에 시대의 상징성을 실었다. 말이 입에서 회자되자 1980년대를 살거나 죽었던 수많은 필부필녀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가, 60년대에 태어나고 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한 인물들의 영웅서사가 되었다. 맞다, 이런 비판은 그동안 충분히 많았고 이제는 식상하다. 불편한 건 따로 있다. 지금도 불현듯 떠오르는, 그 인명록을 열심히 뒤적이던 내 모습이다. 문제 많은 기획이군, 제법 의식 있는 체하면서 나는 그 인명록을 끝까지 들췄던 것이다. 잘나가는 지인이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었으리라.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인지상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지상정일지언정 그것이 현실적인 욕망이 될 수 있는 자와 그저 몽상인 자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바로 이런 것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자 이제는 586세대, 또는 그냥 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정부와 의회, 지방자치단체의 고위공직에 가득하다. 기업과 시민사회의 높은 자리에도 넘쳐난다. 개각 소식이나 기업 인사 소식에 혹여 아는 이름이라도 나올까 내 귀는 쫑긋거린다. 흔들어댈 꼬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기득권 여부를 검증하는 좋은 방법은 뉴스를 듣는 귀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4464일의 투쟁 끝에 복직한 콜텍 노동자들의 소식과 개각 소식 중 어느 쪽에 귀가 잘 반응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나처럼 개각 소식 따위에 귀가 한껏 쫑긋거리는 86세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우리는 기득권자가 되었거나 최소한 기득권 마인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비판을 감수하거나 책임을 지거나.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기득권에게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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