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9 16:30
수정 : 2019.04.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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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노인(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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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만이 아니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노인을 폭행한 사건은 천안, 당진, 서귀포, 원주, 청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일어난 폭행, 방임, 감금과 낙상·의료사고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국민권익위원회로 접수된 입소자 가족의 민원은 3년간 200건이 넘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2017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시설에서의 학대는 327건으로 전체 학대 사례의 7.1%이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도입 이전과 비교하면 6배가 증가한 셈이다.
2008년 우리 사회가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한 것은 노년기의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본인이나 가족한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면 모두가 가입하고 있는 건강보험에 연동하여 월평균 3천원 남짓 보험료를 납부하고 노후에 요양이 필요하게 되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현재 약 67만명의 장기요양 수급자에게 2017년 기준 약 5조원에 이르는 시설급여와 재가급여가 제공되고 있다. 이 막대한 공적 재원은 혼자 거동하고 생활하기 어려워진 노인들의 ‘존엄한 일상’을 보장하기 위해 쓰인다. 그런데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가진 이러한 사회적 의미와 공적 책임은 요양서비스 현장에서 쉽사리 실종된다.
장기요양서비스 현장은 시장이다. 5천여개 입소시설과 1만6천여개 재가기관이 요양서비스를 판매하고 등급을 받은 이용자가 기관을 선택하여 구매한다. 정부는 수급자격을 정하고 서비스 비용을 지원한다. 실제로 노인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대부분은 민간개인사업자다. 전체 장기요양기관의 81.2%를 차지한다. 개인의 자금으로 원하는 곳에 원하는 규모로 요양기관을 세웠다. 적은 재정을 필요로 하고 낮은 시설기준과 인력기준을 갖춰도 되는 소규모 시설이 크게 늘었다. 더 많은 노인을 확보하면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였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어 요양서비스가 필요한 노인들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니, 실제로 요양시설을 선택하는 사람은 노인 당사자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국의 사회학자 피터 타운젠드는 1962년 노인거주시설을 둘러보고 <마지막 피난처>(The Last Refuge)라는 책을 썼다. 1천명 규모 시설부터 6인 요양홈까지 비용도 서비스도 제각각인 노인시설 173곳을 조사하고 열악한 시설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노인거주시설을 금지해야 하며 심각하게 거동이 어려운 노인만 병원이나 공공요양원(public nursing home)을 이용하고 나머지 모든 노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재택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반세기 전에 이루어진 타운젠드의 통찰은 아직도 유효하다. ‘선택’이란 미명 아래 쉽게 요양시설을 가는 게 아니라 거동과 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가진 노인만 사실상 24시간 돌봄이 제공되는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맞는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살던 곳에서 보완적인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양시설은 중증 노인을 보살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시설과 인력을 갖춘 믿을 만한 주체에게만 제한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영세사업자에게 노인을 방치하는 장기요양 운영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 현지조사에서 70% 가까운 요양시설이 인력배치 기준을 위반하고, 최하위 평가를 받은 기관이 2년 뒤 같은 평가를 받으며, 노인을 폭행한 요양보호사와 원장을 계속 일하도록 방치하는 노인요양 시장에 더 이상 노년기 시민들의 안전과 돌봄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확충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보육정책이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 40%’라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2년간 국공립 어린이집을 743개나 늘린 것에 비해 공공요양시설 확대 계획은 불분명하다. 공공사회서비스기관을 운영하겠다는 사회서비스원은 세워지는데 정작 사회서비스원이 운영할 공공요양시설을 늘린다는 계획은 찾기 어렵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장기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요양기관이 늘어야 한다. 돈벌이가 아니라 장기요양의 사명을 우선시하는 공공요양기관을 늘려 수익을 위해 불법도 불사하는 장기요양서비스 현장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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