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30 16:03
수정 : 2019.05.01 09:46
|
한겨레 그래픽
|
“분당구 주민이 바로 옆의 중원구 주민보다 건강수명이 10년 깁니다. 폭염 시기 분당구의 기온이 중원구보다 3도 낮고요. 공원녹지가 많아서 그런 것이지요.” 지난 주말 열린 ‘KSPS-가천대 한국불평등연구랩’의 출범 기념 세미나에 참석한 은수미 성남시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얼마 전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공개한 불평등 실태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 소득 상위 10% 집단이 벌어들인 소득이 20살 이상 개인 소득의 50%를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비중은 치솟기만 했다. 지난 15년여 동안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발전국가 중 상위 10%의 몫이 가장 큰 나라였다.
상위 10% 집단 중 상당수는 지난 20여년 동안 새롭게 등장한 고연봉 직장인, 즉 월급부자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 뒤 되살아나는 대기업에서 억대 연봉 직장인이 대거 나타나기 시작했고,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보수가 눈에 띄게 높아졌으며, 노동조합이 강력한 대기업 제조업 대공장에서 고소득 노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기도 성남시 이웃 구 사이 삶의 격차는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편중된 소득이 쌓이면서 삶의 질 전반으로 확장되며 고착된 것이다. 분당 신도시에 터를 잡은 중산층 중 상당수가 한국 사회 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고소득 직장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그들이 가져가는 소득은 십수년 동안 고공행진을 펼쳤다. 뒤따라가지 못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과 서비스업 종사자들 다수는 뒤처져만 갔다.
소득이 쏠리면 힘도 쏠린다. 힘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공원도 생기고 좋은 병원과 학교도 들어선다. 당연히 그들의 부모들은 더 좋은 돌봄을 받고 그들의 자녀들은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된다.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더 잘 살게 된다. 옆 동네 사회 인프라는 뒤처진다. 이렇게 소득편중이라는 경제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경로를 거쳐 거스를 수 없는 사회문화적 격차로 귀결된다.
그런데 2010년께부터 양상이 바뀌었다. 상위 10% 집단의 상승세는 꺾였다. 그러나 최상위 1% 집단이 가져가는 소득 비중은 쉼없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소득은 최상위 1% 집단에 집중된다. 10%와 1%는 다르다. 2010년 이후 부상하고 있는 최상위 1%는 상당수가 사업가이거나 대주주 또는 자산가다. 이제 재산소득과 사업소득이 격차 확대의 핵심이다. 그중 금융소득만 봐도, 최상위 0.1%가 전체의 3분의 1을 가져간다. 버는 사람이 갖게 되던 10% 월급부자 시대가, 가진 사람이 더 갖게 되는 1% 자산가 시대로 바뀌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예언한 대로다.
우울하게도 이런 흐름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무서울 정도로 따라잡고 있는 미국의 불평등 양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최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가는 사회다. 최고경영자와 보통 직장인 사이의 보수 차이는 300배에 이른다. 우리 사회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 우리는 미국이 40년 달려온 격차 확대의 길을 20년 달렸을 뿐인데, 이미 상위 10%의 소득집중도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곧 최상위 1%가 미국을 따라잡을 기세다.
점점 집중되는 재산소득을 봐도, 확대되는 경영자-직원 보수격차를 봐도, 불안정노동을 키우는 기술변화 양상을 봐도 그럴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가 문제가 아니고, 1%가 로봇 전부를 지배하는 사회가 문제다. 불로소득이 생기는 사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며, 1%가 불로소득 대부분을 가져가는 사회가 문제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1%의 사회로 다가가고 있다. 그 뒤는 0.1%로, 0.01%로 좁아지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권력도 사회문화적 주도권도 그런 소득 흐름을 따라갈 것이다.
10% 사회가 분당과 중원 사이에 10년만큼의 건강수명 차이와 3도만큼의 더위 차를 가져왔다면, 1% 사회가 어떤 격차를 가져올지는 떠올리기조차 두렵다. 주말 세미나에서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장은 “기득권의 성이 너무나 단단하다. 불평등은 이미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고 탄식했다. 문재인 정부 최고 싱크탱크 수장이 탄식하는 중에도, 그 성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심지어 좁아지기까지 하고 있다. 이 물길을 바꾸기 위해 근본적으로 다른 분배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할 때다.
이원재
LAB2050 대표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