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6 17:16
수정 : 2019.05.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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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론관에서 재벌에 대한 면세사업 특혜와 공공사업 규제로 공정경쟁 실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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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기업부문의 역동성은 둔화되었으며 투자와 생산성 상승은 정체되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제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요즘에는 월가의 최고경영자들도 망가진 자본주의를 고치기 위해 부자 증세와 같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보수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의 다음 혁명은 경쟁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독점으로 인한 여러 경제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본 기사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산업집중도가 높아졌고 신생 기업 비중은 줄어들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이 50년 평균치에 비해 76%나 높아서 독점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진입장벽들을 해체하고 현대적이고 강력한 반독점법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년 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으로 대표되듯 진보가 불평등을 소리 높여 비판했던 것처럼 이제 합리적인 보수파와 주류 경제학자들은 독점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여러 문제가 독점 때문이라 주장하여 주목받은 조너선 테퍼의 <자본주의의 신화>라는 책은 이런 관점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라이스대의 구스타보 그루욘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약 75%의 미국 산업들에서 시장 집중이 심화됐다. 이들의 연구는 집중이 심화된 산업에서 이윤과 주가가 높아졌지만 기업의 효율성은 높아지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다른 실증연구에 따르면 시장 집중의 심화가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독점은 불평등도 악화시킨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오터 교수 등의 연구는 플랫폼을 장악한 기술기업 등 독점도가 높은 산업에서 기업의 이윤이 높고 노동자가 임금으로 가져가는 몫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고한다. 독점은 기업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실에서 지역적으로 지배적인 기업이 노동시장도 장악하여 수요독점을 낳을 수 있다. 게다가 기업들 사이의 담합이나 노동자들이 경쟁업체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경쟁금지 조항 등도 기업의 힘을 강화시킨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독점기업들이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여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잠재적 경쟁기업들을 인수했고 반경쟁적인 행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엄청난 로비와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에 기초하여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와 달리 규제는 별로 받지 않았다. 레이건 이후에는 정부의 반독점 정책도 크게 약화되었고, 부와 권력의 집중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독점을 만악의 근원이라 할 만하다. 테퍼에 따르면 경쟁이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20세기 초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독점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자본주의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가 독점 때문은 아니며 경쟁의 촉진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에 깊이 내재한 갈등과 모순 그리고 불안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자 간의 균형과 경제를 관리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외면하는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점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벌의 갑질과 불공정 행위가 독점력 없이 어찌 가능할 것인가. 중소기업들의 협상력과 취약한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기득권을 타파하는 것은 진보도 예외는 아니며 대기업 노조나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연공급 임금체계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전부터 높지만 정부는 공공부문에도 이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경쟁의 촉진을 위해 독점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되, 경쟁을 가로막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규제는 완화해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쟁혁명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회복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국의 보수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기득권을 비판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지지하는 것은 보수의 품격 아닌가. 우리의 보수는 혹시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반기업이라 주장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친시장 혹은 친경쟁이 아니라 단지 친재벌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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