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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2 17:52 수정 : 2019.05.12 19:30

가짜뉴스 페이크뉴스 게티이미지뱅크

네, 전 전문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음모론 창작자죠. 요즘 ‘가짜뉴스’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내용이나 형식에서 음모론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뉴스 형식을 빌려 짧고 가벼운 게 가짜뉴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길고 무거운 게 음모론. 업계에서는 두 용어를 자유롭게 함께 씁니다.

모두가 가짜뉴스는 나쁘다고 하죠.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걸로 밥벌이를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정보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엠비(MB) 시절 4대강 비판은 공론장에서 음모론으로 낙인찍히고 탄압받았죠. 사실 그 시절이 좋았어요. 나 같은 사람이 언제 국가기관과 함께 일해 보겠습니까. 공권력이 내 뒤를 딱 받쳐줘요.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 4대강 비판은 합당한 문제제기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겁니다. 사실이나 진실이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요즘 공론장은 예전과 달라요. 국가기관이나 기성언론이 어떤 문제제기나 비판에 섣불리 낙인을 찍지 못해요. 비판이 활성화된 공론장에서는 사실을 감추고 진실을 숨기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죠.

에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우리 일이 줄지는 않죠. 오히려 창작의 여지가 한껏 넓어졌어요. 과거에는 발주처의 지시가 엄격했다면, 요즘에는 전문가의 창작 가능성이 커진 거죠.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방패 삼아 남들의 인권과 기본권을 통쾌하게 짓밟는 거죠. 물론 공권력의 엄호가 없어서 겁도 나지만, 아티스트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많아졌고 수입도 더 나아진 거 같아요. 유튜브 방송이 효자죠. 직접 고객을 만나니 좋아요.

그래요. 가짜뉴스 대책이 있죠. 가짜 정보를 법으로 규제하고 팩트를 체크하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함양하자. 하지만 보세요. 그런 대책들이 무용하진 않겠지만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던가요? 그런 건 별로예요. 상세히 말할 순 없어요. 내 영업, 아니 전문가 활동에 방해가 될 테니까. 두가지만 말하죠. 첫째, 우리만 가짜 정보 만드나요? 기성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기사 거래하지 않는 언론이 있던가요? 거래된 기사 모두가 가짜 정보잖아요. 몇몇 언론은 우리랑 정말 비슷해. 어쨌든 가짜 정보 규제가 힘들다는 거죠. 둘째, 미디어 리터러시 대책은 조금 이상해요. 우리 상품을 찾는 일반 고객의 특성이 불신이에요. 국가도 과학도 언론도 자식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우리 상품을 찾죠. 그런데 미디어 리터러시는 ‘정보를 쉽게 믿지 않는 능력’이잖아요. 이미 불신으로 가득한 사람을 교육해서 더 불신하도록 만든다. 사실 우린 좋아요. 고객층이 넓어지니깐.

대책을 만드는 데 조언을 하라고요? 너무하시네. 이것만 말씀드릴게. 대책을 만드는 작자들은 너무 거만해. 나 같은 전문가에게도 물어봐야 할 거 아냐. 물론 내가 영업 비밀을 몽땅 알려줄 리는 없지만. 어쨌든 가짜뉴스 창작자의 눈으로 보면 사안이 전혀 달라 보이거든. 일단 그치들과 우리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 그 작자들은 사람들이 왜 음모론을 찾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아. 그냥, ‘이게 올바른 겁니다. 그냥 믿으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걸 믿나? 팩트체크가 그거잖아. ‘무식한 너희들에게 진리를 알려줄게’라고 외치고 끝. 그렇게 의무를 다한 후에 줄창 욕만 하지.

어허, 이 양반 정말 끈질기네. 우리 같은 전문 창작자들이 따르는 흥행 비결을 곱씹어 보면 뭔가 쓸 만한 대책이 나올 수 있겠지. 흥행 비결 두가지만 말할게. 첫째, 고객의 니즈를 간파해야지. 고객은 진리나 사실을 알고자 정보를 취하지 않아. 사실보다 중요한 건 느낌이지. ‘느낌적 사실’이란 말도 있잖아. 사실을 안다고 내 삶이 편해지진 않아.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 그러면 뭐야, 기분이라도 좋게 만들어줘야지. 그래 그거야. 내 창작물은 고객들의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거야. 하지만 신나게 만들 수는 있지. 둘째,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이미 아는 걸 이용해야 해. 사람들은 가르침받는 데 지쳤어. ‘가르친 대로 했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인 거야’라는 반발심이 있고. 우리는 절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 이미 아는 걸 딱 보여주는 거야. 바로 이놈이 당신을 힘들게 한 원흉이오. 우리 함께 그놈을 끝장냅시다! 그러면 게임 끝이야.

자, 이만합시다. 요새 일이 너무 많아. 시간 나면 전화드릴게.(가상 인터뷰 끝)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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