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교수·경제학 서민의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서민’(庶民)은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또는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소득 하위 50%를 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 최하위 20%는 노인 빈곤층이 많다. 소득 하위 20∼50% 계층의 월 가계소득은 약 150만∼250만원이고 가구주 연령대는 35∼64살로, 영세한 사업체의 취약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비전통적 방식으로 불안하고 불규칙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소득 상위 1∼10%의 소득·자산 집중 문제나 소득 상위 20%와 소득 상위 20∼50% 간 격차와 차별 문제도 존재하지만, 지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하위 50%의 서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서민’이란 용어조차 사라져버린 듯하다. 서민의 고단한 생활고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두가지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째, 노동시장 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소득 하위 가구의 소득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필자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 임금은 분명하게 늘었다. 그러나 하위 가구는 고령화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줄어 소득이 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이 늦은 것은 서민의 삶과 생활이 작동하는 구체적 모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공적이전소득의 재분배 기능이 취약하다. 최근 공적이전소득이 상층으로 갈수록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위 20%는 기초연금, 하위 20∼50%는 사회수혜금(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 급여), 상위 50%는 공적연금(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다. 공적이전소득에서 공적연금의 비중은 현재 60%를 넘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현재의 구조와 규모하에서는 공적이전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될 여지가 크지 않다. 이 두가지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첫째, 서민 대상의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 기간제와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차별 시정 등으로 상위 50% 안에서의 격차 축소는 진행되고 있다. 이제 하위 50%에 대해 더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진보가 선호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속도 조절 압력을 받고 있고 보수가 선호하는 근로장려금(EITC)이 강화되는 국면이다. 이념에 따라서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유효한 정책 발굴과 최적의 정책 조합을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둘째, 고용 기반의 사회보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소득과 조세 기반 보호 방안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정책 노력을 기울였지만, 시장에서의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험은 사회의 연대 원리에 기초한 위험공유를 주된 기능으로 한다. 이는 소득이 증가하면 수요가 증가하는 가치재이기 때문에 서민이 당장 선뜻 구매하기에는 비쌀 수도 있다. 조세 기반 재분배는 국가 주도성이 강하지만 더 보편적인 사회적 연대일 수 있으며, 충분히 긴 기간으로 생각하면 위험공유 기능도 가진다.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걷히기 전에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이 1% 증가하면 민간보험 비중은 0.15%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세 기반의 기본소득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중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불확실하고 전례가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보다는 기존 프로그램들을 잘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보험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정부가 재정으로 보조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적 보호 기금’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조세 기반 보호 강화를 위한 ‘증세 공론화’에 정권 차원에서 승부를 걸어볼 시점이다. 한국에서 포퓰리즘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제조업 토대가 여전히 강하며, 포퓰리스트 선동가도 없고 이들이 득세할 만한 정치 지형도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기회 부재와 비전 결핍에 절망하는 청년층이 누적된다면 서민의 분노와 불만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배제할 수 없다. 정책의 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정책 엘리트들의 가슴으로부터의 하방이라도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칼럼 |
[세상읽기] 서민의 삶이 고달프지 않으려면 / 전병유 |
한신대 교수·경제학 서민의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서민’(庶民)은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또는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소득 하위 50%를 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 최하위 20%는 노인 빈곤층이 많다. 소득 하위 20∼50% 계층의 월 가계소득은 약 150만∼250만원이고 가구주 연령대는 35∼64살로, 영세한 사업체의 취약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비전통적 방식으로 불안하고 불규칙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소득 상위 1∼10%의 소득·자산 집중 문제나 소득 상위 20%와 소득 상위 20∼50% 간 격차와 차별 문제도 존재하지만, 지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하위 50%의 서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서민’이란 용어조차 사라져버린 듯하다. 서민의 고단한 생활고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두가지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째, 노동시장 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소득 하위 가구의 소득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필자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 임금은 분명하게 늘었다. 그러나 하위 가구는 고령화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줄어 소득이 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이 늦은 것은 서민의 삶과 생활이 작동하는 구체적 모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공적이전소득의 재분배 기능이 취약하다. 최근 공적이전소득이 상층으로 갈수록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위 20%는 기초연금, 하위 20∼50%는 사회수혜금(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 급여), 상위 50%는 공적연금(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다. 공적이전소득에서 공적연금의 비중은 현재 60%를 넘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현재의 구조와 규모하에서는 공적이전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될 여지가 크지 않다. 이 두가지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첫째, 서민 대상의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 기간제와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차별 시정 등으로 상위 50% 안에서의 격차 축소는 진행되고 있다. 이제 하위 50%에 대해 더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진보가 선호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속도 조절 압력을 받고 있고 보수가 선호하는 근로장려금(EITC)이 강화되는 국면이다. 이념에 따라서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유효한 정책 발굴과 최적의 정책 조합을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둘째, 고용 기반의 사회보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소득과 조세 기반 보호 방안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정책 노력을 기울였지만, 시장에서의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험은 사회의 연대 원리에 기초한 위험공유를 주된 기능으로 한다. 이는 소득이 증가하면 수요가 증가하는 가치재이기 때문에 서민이 당장 선뜻 구매하기에는 비쌀 수도 있다. 조세 기반 재분배는 국가 주도성이 강하지만 더 보편적인 사회적 연대일 수 있으며, 충분히 긴 기간으로 생각하면 위험공유 기능도 가진다.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걷히기 전에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이 1% 증가하면 민간보험 비중은 0.15%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세 기반의 기본소득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중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불확실하고 전례가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보다는 기존 프로그램들을 잘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보험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정부가 재정으로 보조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적 보호 기금’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조세 기반 보호 강화를 위한 ‘증세 공론화’에 정권 차원에서 승부를 걸어볼 시점이다. 한국에서 포퓰리즘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제조업 토대가 여전히 강하며, 포퓰리스트 선동가도 없고 이들이 득세할 만한 정치 지형도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기회 부재와 비전 결핍에 절망하는 청년층이 누적된다면 서민의 분노와 불만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배제할 수 없다. 정책의 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정책 엘리트들의 가슴으로부터의 하방이라도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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