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8 17:01
수정 : 2019.05.29 14:19
만삭의 몸으로 뛰어다니며 손님을 챙기던 그 부대찌개집 사장님은 출산 뒤에도 마찬가지로 가게 안팎에서 분주했다. 아기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연신 라면을 넣어달라, 육수를 더 달라고 주문하며 먹는 데만 열중했다.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고맙다거나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 사장님이 안정적인 기업에 다녔다면 출산 전후 3개월 동안은 유급 출산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웬만한 직장인이었다면 그 뒤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고, 육아휴직수당까지 받았을 것이다. 공립학교 교사였다면 육아휴직을 3년 동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아무 걱정 없이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장님의 남편도 비슷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용주가 개인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같이 져주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에게는 그런 보호장치가 주어지지 않는다. 자영업자뿐 아니다. ‘안정적 직장’ 대신 다른 선택을 한 모든 사람은 보호막 바깥으로 내쳐진다. 어느 방송작가는 아이를 가지면서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다. 안정적 직장을 떠나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꿈을 찾던 이는 혼인과 출산을 앞두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안타까운 이야기는 줄을 잇는다.
크몽이나 숨고 같은 플랫폼 앱을 통해 일거리를 찾아 독립적으로 일하는 디자이너나 외국어 강사들은 어떨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배달기사들은 어떨까? 이들에게도 출산과 육아는 오롯이 자기 책임이다. 그들은 모두 일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낳은 아이나 교사,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이 낳은 아이는 똑같이 한명의 인간이다. 출산율도 똑같이 오르고 장래 우리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도 비슷하다. 그런데 왜 어떤 출산은 다른 출산보다 덜 보호받을까?
출산만 그런 게 아니다. 노후도 개인 책임이다. 회사원이라면 기업에서 절반을 내주는 반값 국민연금도 반값 건강보험도 없다.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보상은 없고, 일이 끊어져도 실업급여나 재훈련을 받기 어렵다. 물론 자녀 대학 학자금을 대신 내주는 사람도 없다. 명절 때 들려주는 선물과 상품권도 없다. 휴가비도 복지포인트도 동아리활동 지원금도 없다. 안정적 직장이라면 기업이 해주는 이 모든 것이 오로지 개인 책임이다. 명백한 차별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해법은 두가지다. 첫째는 ‘고용주 찾기’이다. 어떻게든 일하는 사람의 고용주인 기업을 찾아 무한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노사관계를 강조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해법이다. 둘째는 ‘자격 제한’이다. 고용주를 찾아주는 대신 진입장벽을 높게 쳐서 경쟁자들이 못 들어오게 한다. 개인택시에서 변호사까지, 이발소에서 어린이집까지 사례는 많다.
둘 다 한계에 부닥쳤다. 우선 고용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앱을 통해 들어온 음식주문을 음식점 주인이 받아 동네 배달업체에 전달한 뒤, 그 주문을 받아 배달을 한 기사가 있다고 치자. 누가 이 배달기사의 노후와 건강과 실업 위험을 같이 책임질 고용주인가. 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소유하고 수많은 노동자를 부리며 생산하던 시대와는 달라졌다.
‘자격 제한’은 신규 진입을 차단하며 변화를 가로막는다. 국가가 새롭게 ‘파워포인트 디자인 면허’를 발급하고 무면허 디자인을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 배달기사 국가자격증을 주고 수량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에게도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결과도 참담하다. 스타트업 종사자도 문화예술인 지망생도 심지어 삼성·엘지·현대자동차 경력자도 결국 공기업과 공무원 시험장에서 만난다. 위험으로부터의 도피가 지고지순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이래서는 개인도 불행하지만 국가도 미래가 없다.
크몽이나 숨고 같은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칭송하던 ‘창조적 인재’들이다. 배달기사는 서점에서 아침식사 재료까지 온라인 유통 시대를 열어가는 우리 인터넷기업들을 떠받치는 일꾼이다. 부대찌개집 사장은 위험을 감수하며 자기의 사업을 연 창업가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헤쳐 모이며 유연하게 일하는 방송작가의 삶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을 미리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의 노동을 보호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고용된 사람들만 보호하는 낡은 제도를 대대적으로 고쳐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는 것이 옳다.
이원재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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