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3 16:54
수정 : 2019.06.04 10:35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연구년으로 봄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자들과 토론하고 강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일본과 한국의 경제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큰 기쁨이다.
몇몇 친구는 이미 회사를 옮겼고 자영업을 시작한 녀석도 있었다. 사실 전세계의 맥도날드 매장 수만큼 한국의 치킨집이 많다고 하면 일본과 다른 외국의 연구자들은 깜짝 놀란다. 한국의 취업자 중 임금노동자 비중은 약 75%로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일본은 약 90%다.
한국에 자영업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도 우리 나이쯤 되면 많이들 그만둔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다시 놀란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한 회사에서 더욱 짧게 일해서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6년에 불과하다. 일본이나 서구의 노동자들은 정년까지 일하는 경우가 우리보다 많고 근속연수도 거의 두 배로 길다.
이는 여러 요인과 관련이 있겠지만, 임금체계에서 연공급이 강한 것도 한 배경일 것이다. 10년 넘게 근속한 한국 회사원의 연봉을 신입과 비교하면 유럽보다 훨씬 높고 일본보다도 높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저절로 올라가니 기업들은 비정규직과 외주화를 늘렸고 노동자를 오래 고용하기 꺼릴 것이다. 친구들은 연공제를 낮추더라도 회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연공제의 원조 일본이 바뀌었듯이 우리도 역할과 능력을 더 고려하는 임금제도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자녀들 이야기다. 최근에는 아이를 일본 대학으로 유학 보내겠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어서 일본의 대학과 졸업 후 전망을 물어보곤 한다. 잘 알려져 있듯 취직을 희망하는 일본의 대학 졸업생들은 전공과 무관하게 백 프로 가깝게 취직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대학 졸업생들이 선뜻 지방의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연봉이 대기업의 약 80%일 정도로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나 노동환경의 차이가 작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소기업은 한국보다 생산성과 기술력이 높을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하청기업들과 장기적이고 신뢰에 기초한 계약을 하고 그 관계도 협조적이다. 일본도 오래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1950년대부터 자금지원과 조직화 그리고 기술향상 등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본에 청년실업 문제가 없는 것은 청년층 인구가 줄어들어 일손이 부족해진 현실과도 관계가 크다. 하지만 아베노믹스 이후의 경기회복으로 실업률이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은 중앙은행이 국채의 절반 이상을 매입할 정도로 경기부양을 위해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매년 재정적자가 심각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이 230%가 넘을 정도의 재정상황이지만 재정지출에도 소극적이지 않았다.
한 친구는 우리도 2060년이 되면 일본보다 빠른 고령화 때문에 저절로 복지지출이 세계 최고가 된다고 들었다며 곧 40%를 넘긴다는 국가채무가 걱정된다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노년층의 가난과 사회의 불평등이 이리도 심각한 한국에서 수십년 후를 이야기하며 복지지출을 늘리지 말라는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보다 일찍 인구감소 쇼크를 맞이한 일본은 ‘일억 총활약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청년들의 어려운 삶을 개선하고 보육과 교육의 무상화 등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성장과 분배를 선순환시키고 생산성과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궁극의 성장전략이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은 한국에서 국가채무를 이야기하며 재정확장에 반대하고, 경기가 악화되는데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도 가로막고 있는 이들을 보면 답답한 심정이다. 물론 대외순자산이 세계 1위인 일본경제와 엔화의 지위는 한국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정부부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이 약 11%에 불과하며, 경상수지를 고려하면 대외적 불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얼마 전부터 우울한 일본 경제가 한국의 미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친구들도 우리가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나는 오히려 현재의 일본 경제가 한국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