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4 17:07
수정 : 2019.06.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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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캐롤리나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릴리 레드베터가 연설하고 있다. ‘릴리 레드베터 평등 임금법‘은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하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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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레드베터, 미국 동일노동 동일임금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각성하게 된 계기는 다른 사람의 급여를 우연히 알고 난 다음이었다. 훗날 “인생을 바꾼 쪽지”라고 명명된 그 종이에는 자신의 급여와 함께 같이 일하고 있는 관리자 세명의 급여가 적혀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이 남자 동료에 비해 적은 돈을 받고 있을 거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던 터에, 이 명세서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됐다. 타이어 회사 ‘굿이어’ 공장에서 20년간 일하며 최초의 여성 관리자 직위까지 올랐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이 이런 차별 대우라니.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남자들만큼 인정받기 위해 더 오래 더 성실하게 더 똑똑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 명세서는 인정받기 위해 애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아주 간단하게 비웃고 있었다.
애초에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었나. 아니,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사회가 잘못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 대신 성차별이라는 진짜 문제를 고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1979년 입사한 이래 20년간 차별 때문에 받지 못한 22만여달러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송에서 승리하면 재분배의 패러다임이 바뀔 판이었다.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차별을 통해 쌓아올려진 체제 내부의 기득권 전체와 싸우는 일이다. 아직까지 그런 싸움에서 과거 차별에 대한 보상이 완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사례는 들어본 일이 없다. 대신 미래의 규칙이 달라진다. 릴리 레드베터의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차별임금 반환 소송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문제 자체를 없앨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것이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됐다. 2009년 1월29일,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처음 서명한 법안의 이름은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이었다. 공정임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초석이 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변화로도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은 릴리 레드베터가 우연히 다른 사람의 급여를 알게 된 다음에 시작됐다. 기업 경영혁신 전문가인 데이비스 버커스는 월급을 공개하자고 주장한다. 노동자 입장에서 임금 협상 과정에서의 극단적인 정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사용자 쪽에서도 급여를 공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비밀로 했을 때보다 크다는 주장은 신선했지만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실제 급여 공개를 도입한 기업들에서는 성차별 임금을 비롯해 불공정한 임금체계 문제가 더 많이 해결됐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불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무지’에 기반한 부정적 감정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효율이 높아지고 이직률이 낮아졌다. 적절한 ‘앎’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릴리 레드베터는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청소노동자 김순자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한 그는 2003년 청소일을 시작하고 2006년 노조를 결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의 지역위원장까지 하던 보수파였다. 그를 각성시킨 것은 다른 사람의 급여가 얼마인지 안 다음부터였다. 60만원을 받는 동안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은 250만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2년 대선에서 김 후보가 티브이에 나와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월급 차이가 몇백배 몇천배씩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차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 운도 능력이라는 생각 등 우리 사회에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감정은 자기 자신 역시 차별의 당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기반해 있다. 얼마 전에는 상대 파트너의 희망 연봉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여자가 남자 파트너에게 바라는 희망 연봉이 더 많았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기생하려는 여성들의 심리라고 비난하는 댓글이 잔뜩 달렸다. 그 누구도 그런 모욕을 감수하며 타인에게 기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차별이 있다고 증명하기에도 지쳤다. 그러니, 그냥 모두 연봉을 공개하자. 그리고 그 앎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모두 얼마 받고 있습니까?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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