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09 16:45 수정 : 2019.07.07 14:20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5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왜 그들은 막말을 “징하게 해처먹”을까? 막말은 말로 하는 도발이다. 상대를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도발이 최근 주목받는다. 자유한국당 때문이다. 당 안팎의 인사들이 연일 막말 잔치를 벌인다.

미국에서도 잔치가 성대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도발의 장인이다. 사실이나 진실을 초월하고 관습과 규범을 파괴하는 도발로 그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도발은 그의 국정 철학이자 운영 방식이다. 유럽에도 동료들이 가득하다. 동료가 여럿이지만, 도발을 선거 전략의 수준까지 발전시킨 건 아무래도 독일의 대안당(AfD)이다. 2017년 연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전략가 괴츠 쿠비체크가 말했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야 하며 주의 깊게 기획한 도발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네가지 요소가 정치 전략의 핵심이다. 뚜렷한 목적의식, 지속성, 정치적 비(非)올바름, 용맹함. 한국의 도발자들은 그러한 국제 표준에 충실할까?

첫째, 그들도 목적의식이 뚜렷하다. 정치권력의 획득! 국회의원 당선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필사적이다. 목적을 위해서 과거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심기’까지 보위했던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을 때 그를 부정하고 탄핵했지만, 그를 여전히 추종하는 세력의 존재감을 확인한 순간 석방을 요구한다. 아랑곳하지 않는 건 과거만이 아니다. 도리, 이치, 사리, 약속도 초개와 같이 여긴다. 중요한 건 애오라지 권력 획득, 그에 도움이 되면 취하고 방해가 되면 버린다.

둘째, 정치적 비올바름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독일 사회학자 라이너 파리스는 정치 전략으로서의 도발을 이렇게 정의한다. “규범이나 관례를 위반하거나 금기를 어기는 행동으로 상대를 자극하여 심기가 불편해진 상대가 지탄받을 만큼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 상대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 곧 위선을 제3자에게 폭로하는 전략이다.” 이를테면 대화와 협상을 중히 여긴다고 말하는 정부를 자극해서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도록 만들면 도발이 성공한 것이다. 현 정부와 지지자를 자극하는 데 정치적 비올바름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이 획책한 “폭동”이고, 세월호 유가족이 “시체장사”를 “징하게 해처먹었”으며, 민주화 유공자는 “괴물집단”이다. 외교는 “구걸 외교”,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거나 “그보다 못한 지도자” 또는 “그냥 빨갱이”니까 “연말까지 하야하라”고 도발한다. 그들의 도발은 정부 비판이 아니라 민주국가의 규범에 대한 도전이자 위반이다.

셋째, 지속성도 중요하다. 도발은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주목을 끈다. 전세계의 추세가 그렇다. 정치적 프로그램보다 유권자의 관심이 더 중요하다. 대체 누가 따분한 정치 강령이나 어려운 경제 정책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매력적인 리더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큰 문제가 아니다. 지속적 도발로 존재감을 뽐내는 정치인이 여럿이면 충분하다. 한국의 제1야당은 조직적으로 도발의 지속성을 부추기는 듯하다. 당대표부터 원내대표, 전·현직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도발에 능한 사람들이 많다. 면책특권이 아니었다면 크게 낭패 보았을 국회의원의 징계를 미루거나 그 강도를 조절한다. 최근 도발을 제어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도 있는 모양이다. 막말 의원을 공천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렇다고 지속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직 도입한 것도 아니며 기껏 ‘삼진아웃제’라니 두번은 괜찮을 거다.

넷째, 도발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용맹함이다. 당대표께서 친히 보여주셨다. 5·18과 관련한 숙제(막말 징계와 5·18특별법 개정안)를 ‘캐비닛’에 넣어둔 채로 기념식에 참석하는 용맹함! 자칫 기념식 참석자들이 라이너 파리스가 말한 ‘과도한 반응’을 보였다면 정말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다. 도발 위에 도발을 포갠 고난도의 용맹함이 빛을 보지 못했다.

도발은 가성비가 높다. 권력자원이 부족한 사회운동, 예컨대 그린피스가 도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야당이기에 도발하는 건 당연하다. 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력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가성비가 높은 만큼 리스크도 크다. 도발이 지나쳐 상대는 물론이고 제3자마저 언짢게 만든다면, 그들은 함께 도발자의 위선을 폭로하고 비난하면서 끝내 퇴출시킬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