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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3 17:32 수정 : 2019.08.14 14:08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는 제58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고 이른바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했다. 2020년부터 사용될 기준 중위소득은 2019년에 비해 2.94% 오른 수준으로 정해졌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약 461만원에서 474만원으로 올랐다. 생계급여 대상이 되는 소득 기준액은 142만5천원이다.

기준 중위소득은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의 관문이나 다름없다. 누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가 기준 중위소득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 복지정책의 척추에 해당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기초생보)의 수급기준은 기준 중위소득에 근거한다. 기초생보의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가구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여야 한다. 기준 중위소득이 인상되면 생계급여 기준도 올라가 좀 더 많은 가구가 생계급여를 받게 된다.

또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보 외에 많은 복지정책의 수급자 선정기준으로도 활용된다. 공식적인 것만 따져봐도, 2019년 현재 12개 부처의 78개 복지사업이 기준 중위소득을 사용해 수급자를 선정한다. 정부 부처 외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복지성 혜택의 상당수도 기준 중위소득을 쓰고 있어,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복지 수급자의 생존과 우리 재정의 건전성이 기준 중위소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준 중위소득은 2015년 기초생보의 급여체계가 맞춤형으로 전환되면서 도입됐다. 기존에는 최저생계비를 측정해, 이를 수급 자격과 지급액 산정에 사용했다. 2015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에 따라 기준 중위선을 산출하고,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주요 급여의 기준선을 설정하는 데 쓰게 된 것이다.

중위소득은 개인 혹은 가구의 소득을 크기순으로 배열했을 때 중간의 위치에 해당하는 값을 말한다. 문제는 전 국민의 소득에 관해 가용한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 중위소득을 확인하는 작업은 통계적 추정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국민의 소득분포를 대표할 수 있는 표본조사 자료를 이용해 중위소득이 얼마인지를 통계적 방법으로 추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가구로 할지 아니면 개인으로 할지, 어떤 소득을 포함시킬지, 서로 다른 규모의 가구는 어떻게 비교할지 등 많은 가정이 필요하다.

최근 기준 중위소득 결정과 관련해선 최소한 두가지 문제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준 중위소득은 통상 알려진 중위소득과 차이가 있다. ‘기준’이라는 명칭이 붙는 이유는 기초생보 각 급여의 자격기준선을 결정하는 데 준거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기초생보의 운영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사용하는 중위소득과 다른 방법으로 산출된 것임을 구분하기 위해서다. 또 기준 중위소득은 재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재정 상황에 따라 실제 중위소득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기준 중위소득이 특정 자료를 이용해 산출된다는 점이다. 최근에 산출 근거가 되는 자료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로 이행 중이다. 기초자료가 바뀌면서 중위소득은 큰 폭으로 올랐다. 실제 중위소득은 큰 변화가 없지만 자료를 바꾸면서 중위소득이 오른 것이다. 가금복의 중위소득은 증가율도 가계동향조사보다 높았다. 행정자료가 반영된 가금복은 기존 설문 방식의 가계동향조사에서 잡히지 않던 소득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기준 중위소득을 가금복을 이용해 계산하면 기준 중위소득이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오르게 된다. 복지부의 기초생보 급여뿐 아니라 다른 부처의 복지제도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현재의 기준 중위소득이 바뀌지 않으면 실제 중위소득과 기준 중위소득 사이에는 큰 괴리가 발생한다. 이런 괴리를 방치하면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가 커진다.

이번에 결정된 기준 중위소득은 기존 방식대로 하면서 증가율은 가금복과 가계동향조사를 절반씩 반영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실제 중위소득과 기준 중위소득 간 괴리는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괴리를 좁히면서도 혼선을 막는 방법은 기준 중위소득을 현실화시켰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영향을 평가하는 동시에 어떤 이행과정을 따를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기준 중위소득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복지제도 전체가 불신을 받을 수 있다. 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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