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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8 17:47 수정 : 2019.08.19 12:44

조형근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1908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 사령관 안중근과 그의 부대는 함경북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이었다. 피차간에 죽고 상하고 사로잡히는 자들이 있더니, 일본군과 상인 몇명이 포로가 되었다. 안중근은 일찍이 동양평화와 대한독립을 약속했던 일본의 무도함을 꾸짖으며 “너희들이 바로 역적이 아니고 강도가 아니면 무엇이냐” 하고 대갈하였다. 포로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등박문을 비난하고 거듭 사죄하였다. 풀어주면 난신적자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다짐도 했다. 이윽고 안중근이 말하되, “너희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과연 충의로운 사람들이라 하겠다” 하며 이들을 석방하였다.

<안응칠 역사>에 나오는 일화다. 뤼순감옥의 안중근이 썼다. 풀려난 포로들은 어떻게 했을까? 곧바로 일본군에게 안중근 부대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부대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살아남은 자는 극소수였다. 이 일로 안중근은 비판받고 고립되었다.

안중근은 성마른 사람이었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어서 실수도 많았다. 어린 시절, 툭하면 공부는 안 하고 들로 산으로 사냥을 다녔다. 시쳇말로 문제아였다. 술과 가무를 즐겨서 기생도 잘 찾았고, 심지어 기생을 때린 적도 있었다. 돈을 벌겠다고 복권회사를 차리기도 했으니 안중근은 한국 사행산업의 선구자였다. 포로 석방 일화처럼 너무나 치명적인 과오도 저질렀다. 그 과오를 뼈에 새긴 다음 목숨으로 갚았다. 안중근이 처음부터 위대했던 건 아니다. 그는 실수와 과오를 겪으며 성장해간 인물이다.

안중근보다 8년 늦게 태어난 홍사익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왕족을 제외하면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장성까지 진급했으니 그야말로 친일파의 거두다. 평민 집안에서 태어나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영친왕이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로 유학을 갈 때 동기로 수행했다. 이후 엘리트 코스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을 거치며 승승장구, 중장까지 진급했다. 1944년 일본 남방총군 총사령부의 병참총감에 임명되었고 연합군 포로수용소장을 겸직했다. 포로 학대와 학살 혐의를 받아 비(B)급 전범으로서 사형되었다.

홍사익은 거물 친일파에다 전범이지만 꽤나 복잡한 인물이기도 했다. 패전 소식을 접했을 때, 조선인이니 탈출해서 목숨 보전하기를 권하는 부하들에게 제복을 입고 있는 한 이 제복에 충성하겠다며 탈출을 거부했다. 사형 선고에도 항소하지 않았다. 일본군을 탈출한 일본 육사 동기 지청천 등의 독립군 합류 권유는 거절했지만, 평소 조선인임을 숨기지 않았고 때로 조선인 차별을 막기도 했다고 전한다.

안중근을 깎아내리고 홍사익을 높이고자 함은 아니다. 그럴 리가. 그보다는 영웅도 악당도 못 되는 우리들 보통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의 한-일 관계 악화에다 광복절까지 겹치면서 독립투사들의 위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재조명이 한창이다. 친일파에 대한 분노도 높아지고 있다. 독립운동으로 제 삶을 희생한 이들에 대한 신원과 추념은 당연하다. 제 동족을 억압한 대가로 일신의 영화를 누린 자들에 대한 분노도 자연스럽다.

그래도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익숙한 선악 구도에서 이제는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독립투사를 무결점의 영웅으로 신성화할수록 그럴 용기가 없는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게 된다. 그들의 용기가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 낼 위대한 것으로 신화화될수록 존경의 염을 외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친일파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친일파가 친일파가 된 이유는 원래 나쁜 놈이었기 때문이라는 식은 난감하다. 예컨대 왕족과 함께 특급 출세 코스로 진입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진지하게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성공을 거부하면서까지 올바른 윤리적 결단을 내릴 수 있으려면, 평소에 윤리적 난관과 대면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친일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단지 친일 청산이 미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친독재, 친재벌, 친자본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윤리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실은 이 결함투성이 인간들이 힘겹게 내딛는 한 걸음들이 모여서 역사가 된다. 그래서 가끔씩은 누추한 제 모습을, 욕망을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어느새 저편에 가 있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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