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8.20 17:53 수정 : 2019.08.20 21:13

이원재
LAB2050 대표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우리의 젊음은 ‘교실 이데아’의 전율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배낭여행 1세대가 되어 세계시민의 꿈을 꾸었습니다. 김대중-김정일 사이의 남북정상회담에 흥분하며 평화의 꿈을 이어갔습니다. 세계로 영토를 넓히는 대기업에서, 인터넷 시대를 열며 기세를 올리던 벤처기업에서 꿈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자리,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서 죄 없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눈물로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40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페이지터너 역할을 했습니다. 베이비부머와 386세대가 지휘봉을 잡고 연주자석을 차지한 오케스트라에서 악보를 넘겨주며 도왔습니다. 투표소로 몰려가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도왔습니다. 무명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뒤에서 도왔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광장에 나섰고, 부쩍 자란 아이들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늘 제자리로 돌아와 성실한 산업역군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아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것을 집어넣으며 옆자리의 아이를 밟고 올라서라고 윽박지르는 우리 교실의 모습은 여전히 이데아와는 거리가 멉니다. 최초 남북정상회담의 흥분은 돌고 돌아 간신히 다시 정상회담으로 되돌아왔고 그마저 위태위태합니다. 성수대교의 기억에 사무친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는 가슴을 후벼파는 눈물의 데자뷔였습니다.

산업화는 성공했다는데, 우리 경제는 여전히 1970년대 국가가 제공한 땅과 산업을 차지했던 대기업들이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기업이 끼어들 틈은 여전히 없고 창업가들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소득은 몰리고 몰려 상위 10%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세계 최악의 불평등 구조가 되었습니다. 많은 청년과 여성은 생산에서도 보상에서도 체계적으로 배제됐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안정적이던 제조업 고용이 흔들리면서 40대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가 성공했다는데,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작은 악의 싹들이 자라나 뿌리를 박고 힘을 키우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의 부당한 위계와 차별과 혐오가 계속 불거집니다. 거대한 악은 사라졌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매일 일터에서 학교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사회 여기저기서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로 갈등이 터져나옵니다. 고도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갈아 넣는’ 과거 산업화의 방법만으로는, 거대한 악을 상대로 똘똘 뭉쳐 싸우는 민주화운동의 추억만으로는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벼농사 체제’가 가져온 위계 구조가 우리 사회의 근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나이가 많은 집단이 어린 집단을 지배함으로써, 연장자 집단 중 엘리트가 전체를 지배하도록 짜인 연공서열형 협업 체제가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장자의 지식과 기술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벼농사의 구조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앞선 세대의 지혜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는 없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더 효과적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기술 환경과 국제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그리됐습니다. 벼농사 체제를, 연공서열 구조를 깨뜨려야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한 세대가 자리를 독차지하는 구조를 세대 균형이 이뤄진 구조로 바꿔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40대가 나서서 이 구조를 바꾸는 꿈을 같이 꾸어보면 어떨까요? 고도성장과 저성장의 사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사이에서 살아온 우리가 균형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대와 30대도 객석에서 일어나 지휘자나 연주자의 자리로 옮기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연령과 위계보다는 능력에 따라 지휘자가 정해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휘봉을 놓은 지휘자도 연주자석에서, 객석에서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회에서, 정부에서, 기업에서, 비영리단체에서 의사결정권자 자리에 세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사회 전반에서 권한의 재구성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고등학생이 일어나서 4·19혁명을 일으켰던 1960년대 우리나라 중위연령은 10대였습니다. 대학생이 시대정신을 끌고 가던 1980년대 중위연령은 20대였습니다. 올해 중위연령이 43살입니다. 40대의 시간입니다. 이전 세대를 설득하고 다음 세대에게 손을 내밀면서 소통과 변화의 메신저 역할을 할 시간입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