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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2 17:31 수정 : 2019.09.03 13:06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카라는 3개월 전에 우리 집에 왔다. 카라는 태어난 지 3개월 된 새끼 고양이였는데, 입양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만 맡아달라며 친구가 부탁한 것이었다. 카라는 등과 얼굴에 호랑이 같은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였는데, 특히 눈가의 줄무늬가 아이라이너로 일부러 그려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꼭 마스카라를 한 것 같네.”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구분할 줄 모르는 남편이 말했다. “그러네.”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진 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카라는 카라가 되었다. 며칠 뒤 우리는 카라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카라가 자기 키의 3배쯤 되는 점프를 지치지 않고 해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용수철 같아. 수철이로 지을 걸 그랬다.”

카라는 에너지가 넘치는 고양이였다. 우리 집에서 그릴 수 있는 가장 긴 직선을 찾아내 쏜살같이 달렸다. 현관의 신발 사이에서 뒹굴다가 이불 속으로 뛰어들었고 시원하게 똥을 눈 뒤 싱크대 위로 점프했다. “안 돼” 하고 붙들려고 하면 카라는 경찰에 포위되지 않으려는 시위대처럼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이 집에 공기처럼 흐르던 규칙은 온통 인간중심적인 것들이어서 어린 고양이를 납득시키기가 몹시 난감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여서, 카라는 새벽 1시와 5시에 인간의 손과 발을 사정없이 물었다. 자다가 습격을 당하고 피를 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고양이의 이빨과 발톱은 정말로 날카로워서 우리는 매일 밤 정글 속에 이불을 펴고 누운 기분이었다. 카라와 함께 사는 일은 인간적으로 아주 피곤했고, 왜인지 굴욕적이었고, 무엇보다 몹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보름이 지났을 때 친구로부터 우리 집에 오기 전 카라의 상황을 들었다. 태어난 지 2개월이 됐을 무렵 카라는 상자에 담긴 채 서울 난곡터널 앞에 버려져 있었다. 카라를 데려다 키운 건 스무살 남짓한 여자애였다. 그가 사는 방은 고시원처럼 작아서 겨우 발을 뻗고 누울 만했는데 그마저도 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친구가 말했다. 가정과 학교 바깥에서 살아온 여자애는 이미 1천만원도 넘는 카드빚을 지고 있었다. 카라는 그 방에서 한달 동안 묶여서 지냈다고 했다. 나는 한숨을 폭 쉬었다. 갚아야 할 돈이 많은 어린 여자의 생활은 몹시 고단했을 것이다. ‘나였어도 묶었을 거야.’ 나는 빠르게 인간의 마음을 이해했다. 카라를 알기 전이었다면 아마 거기까지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어느샌가 자고 있는 여자애를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작은 고양이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강아지처럼 낑낑댔을까. 용수철처럼 펄쩍펄쩍 뛰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이상할 만큼 가슴이 아파왔다. 카라에게 이빨과 발톱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친구가 돌아간 뒤 설거지를 하다가 나는 툭 뱉었다. “우리가 키우자.” 실은 그 말이 튀어나올까 봐 보름 동안 참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걸레질을 하던 남편이 무심한 척 받았다. “그러자.” 언젠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낳았을 때 좋았어요?” 아버지는 대답했다. “아니, 무서웠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낯선 존재가 무섭도록 좋았다. 나에게 동물이란 갇혀 있거나 묶여 있거나 살점으로만 존재했다. 하나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본 적 없었다. 나는 간절히 카라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남편에게 같이 살자고 말했던 순간처럼 뭉클한 기분이 되었다.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혁명 같은 그런 앎의 순간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나는 동물적으로 알았다. 마흔이 되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40년 동안 쓰지 않았던 감각을 찾아서 훈련하겠어. 살아왔던 방식대로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보는 거지.” 오른손잡이였던 남편은 그날부터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엉뚱하지만 그럴싸해서 나도 따라 해보고 싶었다. 카라를 만났으므로, 머리로만 알던 것, 미루고 미루어오던 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도 동물이란 감각을 일깨우는 것.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잊지 않을 것. 나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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