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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4 18:12 수정 : 2019.09.05 12:41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

늦여름 한반도에는 여전히 많은 태풍이 지나간다. 한-일 간, 미-중 간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전세계 많은 국가들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R(경기침체·recession)의 공포’에 시장은 위축돼 있다. 10월에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폭풍이 다시 불기 시작할 것이고,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정권들의 위세가 약화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 한국은 세계와의 관계 맺기 방식에서 커다란 변화의 압력을 받는 변곡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필요하다.

연초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탈세계화, 이른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sation)을 특집 기사로 보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경 간 투자, 무역, 대출, 공급망이 모두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감소하는 ‘새로운 부진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미-중 분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 흐름은 일정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에서 교역재를 생산하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자동화 등 기술혁신으로 저임금 지역으로의 아웃소싱이 둔화되고 있다. 국경 간 자금 이동의 감소로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운전자금 조달이 어려워졌으며, 운송 비용이 더 이상 감소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왔고, 신흥시장 국가 간 내부 거래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한계 편익이 감소하고 있다.

반면 올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세계화 4.0’이 화두였다. 국경을 넘나드는 제조공장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 3.0은 중단될지 모르지만 세계화 자체는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화 3.0은 1990~2010년간의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Hyper-Globalization)으로 서구의 산업 지식과 아시아의 제조 기능이 글로벌 가치사슬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세계화 4.0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로봇이 세계화와 결합하여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는 측면을 강조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의 자율공급망으로 발전하고, 리처드 볼드윈의 저서 <글로보틱스 대변동>에서 강조됐듯이 글로벌 온라인 노동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세계화 4.0은 정보와 아이디어, 사람의 국경 간 이동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올트먼이 개발한 ‘글로벌 연계지수 2018’(DHL Global Connectedness Index 2018)은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세계화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세계화는 덜 진전돼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평균적으로 기업 경영인들조차 세계화가 실제 세계화보다 5배나 더 되어 있다고 응답했다. 세계화는 아직 이론적 최고치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기술에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글로벌 지향성이 매우 강한 세대로 세계화 4.0을 주도할 수 있다.

세계화가 주춤하여 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로 갈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나갈지는 불확실하다. 사실 세계화의 운명은 경제적, 기술적 측면보다 정치적, 사회적 측면이 더 중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세계화로 큰 혜택을 받았음에도 세계화로 치러야 할 비용을 부담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역풍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에 의존하는 금융(부채)주도 성장은 경제의 침몰을 방어했을지는 몰라도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이나 세계화 4.0이 불평등과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적 반동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초세계화 시기에 커다란 혜택을 본, 그럼에도 불평등 심화와 일자리 양극화라는 내상을 크게 입은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세계화의 시대에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대니 로드릭이 세계화의 역설에서 지적한 “세계화-국민국가-민주주의의 트릴레마” 문제도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로 다가왔다. 모든 정책 보고서의 앞 장에 기술 변화, 저출산 고령화와 더불어 세계화를 배경 요인으로 하나 추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세계는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과 커다란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어두운 밤에 컴컴한 방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검은 고양이를 찾는” 철학자의 노력이 기업, 지식, 정책 담당자들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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