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지방법원 판사 그 어느 때보다 공직자의 자격에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이다. 사람들의 이목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로 쏠려 있다. 나는 사법농단을 정리한 책을 읽었다. <두 얼굴의 법원>. 내내 품어온 질문이 다시 또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어쩌다 이런 일들을 저지르게 됐을까. 관여 법관들 모두 10년차 이상의 중견 법관이었다. 그들은 이런 일, 범죄의 성부를 떠나 판사라면 누구나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을 일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었을까. 간간이 들려오긴 한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판사들의 심정이. 그 전에도 해오던 일이었다, 시키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익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사법부를 위한 일이었다. 그 전에도 해오던 일이었단 변명이야 부정의의 평등을 단호하게 배척해온 법원의 입장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 시키면 따를 수밖에 없었단 변명도 거부한다고 해임시킬 수도 없는 판사직인데 무엇이 그리 두려워 따를 수밖에 없었나 싶어 기각한다. 하지만 나머지 두 변명은 의미심장하다. 사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사법부를 위한 일이었다. 과연 그들의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것인가, 사법부를 위한 것인가. 법조인, 비법조인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토론했다. 한 사람은 말했다. 문건들을 보고 이 사람들은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현실이 시궁창인데 사법부만 독야청청할 수 있겠어요? 혼자 원칙을 외치면 바보가 되지요. 말을 듣고 보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판사들이 작성한 사법농단 문건들에는 국정 운영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담겨 있다. 여러 재판들을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라고 평가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원세훈 2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되자 걱정하며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파기할 수 있는 법리를 열심히 찾는다.(이 보고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에게 공유되었고 놀랍게도 위 보고서와 똑같은 취지로 2심 판결이 파기되었다.) 입법 관련하여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고자 국회의원이 당사자인 재판의 양형 전수조사 및 분석을 도맡아 해준다. 대통령 관심 사안에 대하여 재판 절차 진행 정보 등을 제공하기도 하고,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자 방어 논리도 검토하여 준다. 강제동원 사건에 이르면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올리거나 연기하기 위해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태세로 보고서를 쓴다. 재판이 연기되거나 피해자들이 패소할 경우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여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조언도 곁들인다. 섬세하고 비장한 국정 운영이다. 이들은 ‘삼권분립’을 ‘삼권이 서로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가진 후 한마음 한뜻으로 대통령에 협력한다’는 내용으로 해석한 것인가 궁금할 정도다. 이런 문건들을 작성하면서 관여 법관들은 국정을 운영한다는 자부심, 엄혹한 현실 앞에서 사법부를 지켜낸다는 비장함을 느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판사는 재판하는 자이다. 독립하여 재판하되, 적법절차를 지키고 재판을 공개하여 통제를 받는다. 개별 재판을 단지 정치지형의 변수 중 하나로 취급해선 안 된다. 국정을 운영할 충분한 능력과 열의가 있다 하더라도 국정 운영에 신경 끄고 재판에만 집중해야 한다. 청와대나 국회의 재판 관련 청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사법부가 추진하는 입법에 장애가 생기고 예산이 깎이더라도 차라리 그것을 감내하고 말지 청탁에 응하진 않아야 한다. 사법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자세일 것이다. 적법절차를 따르는 독립한 재판이 사법의 모든 것인데, 사법부를 지키기 위해 이를 허문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 식으로 사법부를 지킬 수 없다. 판사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가 타협하고 이익을 교환하여 각자 조직의 이익을 챙기는 한가운데 사법부만 혼자 덩그러니 놓이는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사법이 재판으로 국정 운영에 협력할 여지가 생겨 고립을 면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국정을 운영할 능력과 자질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판사는 재판에만 집중하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사법농단의 실행은 어쩌면 바보가 되지 못한 판사들에 의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판사들 개개인이 스스로 바보가 되자고 다짐하는 일일 수도 있다. 나부터 바보가 되어야겠다.
칼럼 |
[세상읽기] 판사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 류영재 |
춘천지방법원 판사 그 어느 때보다 공직자의 자격에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이다. 사람들의 이목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로 쏠려 있다. 나는 사법농단을 정리한 책을 읽었다. <두 얼굴의 법원>. 내내 품어온 질문이 다시 또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어쩌다 이런 일들을 저지르게 됐을까. 관여 법관들 모두 10년차 이상의 중견 법관이었다. 그들은 이런 일, 범죄의 성부를 떠나 판사라면 누구나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을 일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었을까. 간간이 들려오긴 한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판사들의 심정이. 그 전에도 해오던 일이었다, 시키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익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사법부를 위한 일이었다. 그 전에도 해오던 일이었단 변명이야 부정의의 평등을 단호하게 배척해온 법원의 입장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 시키면 따를 수밖에 없었단 변명도 거부한다고 해임시킬 수도 없는 판사직인데 무엇이 그리 두려워 따를 수밖에 없었나 싶어 기각한다. 하지만 나머지 두 변명은 의미심장하다. 사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사법부를 위한 일이었다. 과연 그들의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것인가, 사법부를 위한 것인가. 법조인, 비법조인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토론했다. 한 사람은 말했다. 문건들을 보고 이 사람들은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현실이 시궁창인데 사법부만 독야청청할 수 있겠어요? 혼자 원칙을 외치면 바보가 되지요. 말을 듣고 보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판사들이 작성한 사법농단 문건들에는 국정 운영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담겨 있다. 여러 재판들을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라고 평가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원세훈 2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되자 걱정하며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파기할 수 있는 법리를 열심히 찾는다.(이 보고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에게 공유되었고 놀랍게도 위 보고서와 똑같은 취지로 2심 판결이 파기되었다.) 입법 관련하여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고자 국회의원이 당사자인 재판의 양형 전수조사 및 분석을 도맡아 해준다. 대통령 관심 사안에 대하여 재판 절차 진행 정보 등을 제공하기도 하고,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자 방어 논리도 검토하여 준다. 강제동원 사건에 이르면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올리거나 연기하기 위해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태세로 보고서를 쓴다. 재판이 연기되거나 피해자들이 패소할 경우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여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조언도 곁들인다. 섬세하고 비장한 국정 운영이다. 이들은 ‘삼권분립’을 ‘삼권이 서로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가진 후 한마음 한뜻으로 대통령에 협력한다’는 내용으로 해석한 것인가 궁금할 정도다. 이런 문건들을 작성하면서 관여 법관들은 국정을 운영한다는 자부심, 엄혹한 현실 앞에서 사법부를 지켜낸다는 비장함을 느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판사는 재판하는 자이다. 독립하여 재판하되, 적법절차를 지키고 재판을 공개하여 통제를 받는다. 개별 재판을 단지 정치지형의 변수 중 하나로 취급해선 안 된다. 국정을 운영할 충분한 능력과 열의가 있다 하더라도 국정 운영에 신경 끄고 재판에만 집중해야 한다. 청와대나 국회의 재판 관련 청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사법부가 추진하는 입법에 장애가 생기고 예산이 깎이더라도 차라리 그것을 감내하고 말지 청탁에 응하진 않아야 한다. 사법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자세일 것이다. 적법절차를 따르는 독립한 재판이 사법의 모든 것인데, 사법부를 지키기 위해 이를 허문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 식으로 사법부를 지킬 수 없다. 판사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가 타협하고 이익을 교환하여 각자 조직의 이익을 챙기는 한가운데 사법부만 혼자 덩그러니 놓이는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사법이 재판으로 국정 운영에 협력할 여지가 생겨 고립을 면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국정을 운영할 능력과 자질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판사는 재판에만 집중하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사법농단의 실행은 어쩌면 바보가 되지 못한 판사들에 의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판사들 개개인이 스스로 바보가 되자고 다짐하는 일일 수도 있다. 나부터 바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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