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17 17:57 수정 : 2019.09.18 14:24

이원재
LAB2050 대표

몇달 전 방문했던 경남 남해군에서는 몇몇 동네에서 나온 청년회 연령 확대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현재 65살로 되어 있는 청년 연령 상한을 70살까지 올리자는 의견이 나와서다. 청년회에서 활동할 ‘젊은이’들의 연세가 65살을 넘어서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고령화에 맞춰 ‘젊은이’ 나이를 점점 높이다 보니 이렇게까지 됐다.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사회적 논의들에서 청년은 계속 부모에게 딸린 미성년자로 취급됐다. 1980년대, 199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이 이야기하면 기성세대는 최소한 경청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예 사라졌다. 스무살 넘은 자식의 결정에 대해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연령도 슬금슬금 높아진다. 이러다가는 30대, 40대도 미성년자 취급을 받을 날이 곧 올지 모른다.

이와 맥을 같이하는 현상이 저출생이다.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혼인을 하더라도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올해 출생아 수는 30만명가량일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2017년의 35만명에서 5만명이나 빠진 숫자다. 인구 자연감소도 예상보다 10년이나 빨리 시작된다. 혼인과 출산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면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배경에는 경제 문제가 있다. 재무적으로만 따지면, 인생은 크게 적자구간과 흑자구간으로 나뉜다. 평균적으로 아동청소년기에는 버는 소득은 없고 쓰는 지출만 있으니 적자다. 장년기에는 노동소득이 지출보다 커져서 흑자다.

보통 청년기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며 손익분기점을 지난다. 문제는 그 손익분기점이 점점 늦춰진다는 것이다. 2010년 27살이던 분기점이 2015년 29살로 늦춰졌다. 아마 지금쯤 30살이 넘었을 것이다. 그만큼 청년들의 경제적 독립도 늦어졌다. 초혼연령이 늦춰지고 첫 자녀 출산이 늦춰지는 시기와 겹쳐진다.

그나마 다른 적자구간인 아동기나 노년기에는 국가 예산이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아동기엔 절반, 노인기에는 3분의 2가량을 국가가 부담한다. 그런데 국가는 청년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 청년기에 발생하는 적자는 대부분 개인의 부담이다. 청년들이 대부분 마이너스 인생을 살면서 부모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연히 스무살 넘은 청년들까지 부양할 형편이 되는 집과 안 되는 집 사이 격차가 산처럼 커진다.

청년의 경제적 독립이 이뤄져야 사회적 목소리도 커진다. 경제적 안정이 이뤄져야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과 혁신도 할 수 있다. 격차가 줄어들어야 공무원·공기업 시험에만 목매지 않을 것이고, 입시 공정성에만 피를 끓이지 않고 실제 일의 성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추경예산이 통과됐다. 또 정부 내년 예산안도 잡혔다. 올해보다 좀 더 규모가 커질 것이다. 이 예산을 청년에게 먼저 써서 마이너스를 메꿔 보자. 청년들이 경제적 독립을 이루면서 능력도 키울 수 있도록 자원을 집중하자.

우선 청년기본소득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생계 불안을 일단 거둬내야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부잣집 청년뿐 아니라 모든 청년 개인에게 혁신과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을 경제적으로 독립시키면 50~60대도 부양자 역할을 이어가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미 시행중인 다양한 지자체 청년기본소득 정책들을 묶어 정비할 시기도 됐다.

다양한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가 프로젝트를 기획할 필요도 있다. 환경을 살리며 일자리를 만드는 그린뉴딜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신기술과 사회적 가치를 접목하는 새로운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해볼 만하다. 미국에서는 국가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성장해 나중에 실리콘밸리에서 세계적 기업을 여럿 열었다.

또한 청년들이 공무원과 공기업으로만 몰리지 않도록 공공부문의 특권을 줄여야 한다. 한번 자격을 획득한 이들에게 평생 특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병들게 한다. 오히려 노동시장 바깥에 있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임시직 노동자 같은 이들에게 공공부문 수준의 보호를 국가가 제공하자.

국가가 청년에게 직접 돈을 쓰면 둘 중 하나의 경로로 간다. 자신에게 쓰거나, 혼인이나 출산을 통해 궁극적으로 아동에게 쓰게 된다. 둘 다 현재의 격차를 해소하는 분배정책이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정책이기도 하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