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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3 16:20 수정 : 2019.10.04 14:11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수년 전 한 인권 관련 회의가 있었다. 당시 인권 상황에 대한 입장문이 준비됐다. ‘심지어는 변호사까지도 연행되는 상황’이라는 식의 문구가 초안에 들어갔다. 문제제기가 있었다. 변호사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특별한가. 인권활동가, 일반 집회 참가자의 연행은 특별하지 않은데 변호사들은 특별히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인가. 변호사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는가. 이러한 관점이 인권적으로 올바른가.

어느 사회이건 법률가는 인권과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법률가도 결국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보호의 수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어느 사회이건 법률가는 특권층이기 때문에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이 보통이다. 법률가의 구체적인 행태는 이러한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 결과다.

얼마 전 서울에서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주관한 세계변호사협회 총회가 열렸다. 가장 대표적인 국제 변호사단체인 이 협회 총회에는 5천명 넘는 국내외 변호사들이 몰렸다. ‘법률가 독립, 법의 지배, 사법 접근권에 대한 위협’ 관련 세션에서 발표를 했다. 최근 몇년간 수십명의 법률가들이 살해당한 필리핀 등 정말 심각한 발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발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외부로부터의 직접적인 공격이나 위협과 무관하게 변호사단체와 그 지도자들은 내적 독립을 지키고 있는지, 인권 옹호와 관련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발표를 했다. “좀 불편하게 느끼시겠지만 인권변호사로서 여러분이 불편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제 전문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영향력 있는 변호사단체나 그 지도자가 주로 자신의 이익에만 기초한 활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편향을 보일 경우 이는 법률가의 내외적 독립, 법의 지배, 사법 접근권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년마다 있는 변협 협회장 선거에서 대부분의 공약은 변호사 직역 수호와 복지에 맞춰져왔다. 변호사 본연의 임무인 인권 옹호와 정의 실현과 관련된 공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후 실제로 어떤 인권활동을 했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인권 공약을 언급하는 것은 당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존재해왔다. 과연 한국의 변호사들이 이 정도 수준인가.

변협은 세월호 참사 직후 적극적으로 피해자 법률지원 활동을 수행했다. 그런데 당시 정권이 피해 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협회는 태도를 바꿨다. 변협의 재정적 지원으로 진도와 안산에 파견되어 있던 변호사 3명에게 일방적으로 지원 중단을 통보했다. 직역 수호를 위한 국회 로비를 해야 하는데 여당 국회의원들이 만나주지 않아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인권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찬성 의견서가 아무런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변협 명의로 여당에 제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법률가 탄압, 사회적 인권 침해에 대해 많은 경우 법률가 대부분은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반응하거나 공권력의 행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세계변호사협회는 그 회원들, 특히 각국의 변협과 그 지도자들이 내적, 외적 독립을 지키고 적극적으로 인권 옹호 활동에 나서도록 독려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접근성을 높이고 조직구조를 개편하여 현장의 인권변호사들이 실질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을 중심으로 한 단체 회원들 간의 네트워킹, 인권활동 조직구조와 활동방식 등에 대한 상호 자문 등 세계변호사협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인권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법률가도 여러 한계나 문제를 지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교수, 변호사 등에 대해 ‘권력 예비군’ ‘어공 예비군’ ‘위선자’라며 말로만 개혁을 떠들면서 권력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신랄한 비판을 했다. 원래 의도된 것이었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건, 현실은 분명 어느 정도 그러하다. 정당한 비판이고 가슴 아프게,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 용기와 현명함이 동시에 있지 않으면 남을 욕하기 이전에 스스로 길을 잃기 쉬운 시대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우기며 푸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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