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4 18:20
수정 : 2019.11.15 02:39
주상영ㅣ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내년부터 1955년생 베이비부머가 생산인구(15~64살)에서 탈락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앞으로 10년간 생산인구가 300만명이나 줄어드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당분간 전체 인구수에는 큰 변동이 없을 예정이지만 내년부터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인구구조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도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청년들은 기회만 있으면 서울과 수도권으로 오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서 취업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특별추계’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 비율은 매해 7월 기준으로 2020년에 50.1%, 2030년 51.0%, 2040년 51.6%로 계속 높아진다. 강력한 정책 대응이 없으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갈지 모른다.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수도권 집중도가 올라가는 것은 지방 소멸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두개의 선택지가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사실상의 도시국가로 가든지 아니면 힘들더라도 대담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는 기회균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든 차별받지 않고 개인적 성취의 기회를 얻으며 국민소득 수준에 걸맞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지역균형발전은 가장 확실한 내수 확대 정책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단순한 이전지출과는 차원이 다르다. 출생률 제고 대책이기도 하다. 이제 서울에서 집을 얻어 결혼하고 아이 둘 낳아 키우는 것은 특권에 가깝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실질적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포용이나 혁신과 같은 수사에 그치지 말고 대담하게 자원을 몰아주는 발상의 전환과 용기가 필요하다. 미적미적하다 보면 30년쯤 뒤에는 인구의 3분의 2가 수도권에 모여 사는 이상한 나라가 될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어디서든 수도권으로 접근하기 수월해서 인구를 분산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중산층과 전문 인력이 지방에 정착해서 정주할 만한 좋은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는 한 속수무책의 상황에 이를지 모른다. 선진국 수준에 걸맞은 주거, 교육, 의료, 문화 서비스를 갖춘 공간을 조성하고 확산시켜나가야 지방 소멸을 피할 수 있다. 요컨대 생활비는 저렴하되 삶의 질이 높은 생활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기관, 산업 클러스터, 연구개발(R&D) 센터, 공공기관, 의료기관이 밀집된 고급형의 자족 도시가 육성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거점 국립대학을 과감히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지역 내 교육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대형 의료기관이 아직도 부족하고 대형 대학병원의 확장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이므로, 지역별로 중형급 정도의 공공병원을 설립하여 높아진 소득 수준에 걸맞은 의료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
공교육과 의료 등 지역의 공공서비스 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를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교사, 교수, 의사, 간호사 등 정부가 정원과 보수 책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전문 직종에 대해서는, 수도권에 비해 업무 강도는 낮으면서 보수는 높은 비대칭 구조를 유발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정주할 수 있다.
고임금-고학력-고숙련 인력이 계속 머무르도록 파격적인 유인을 제공하는 비대칭 전략, 자원을 몰아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대담한 전략이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더는 기업을 유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국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새로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면, 당장 시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지역 거점 국립대학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이다. 그리고 초중등 교육과정의 혁신에 착수하는 일이다. 서울에서 판에 박힌 사교육을 받고 자라는 고만고만한 학생보다 훨씬 나은 인재를 지방에서 길러낼 준비를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확장을 통해 경기 하방 위험에 대처하고 있는데, 그것은 올바른 방향이기도 하다. 인구 변화의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필자는 재정확장을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적어도 중기적인 정책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확장재정 기조에 국정 철학을 담는다면 그것은 지역균형발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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