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4 18:10
수정 : 2019.12.05 02:39
김광길 ㅣ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올해 여름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외국인에게 평양에 전당포란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놀라웠다. 어릴 적 손목시계를 맡기면 약간의 돈을 빌려주던 전당포가 기억난다. 쇠문을 열고 들어가면 철망이 쳐진 유리 안 전당포 주인의 무뚝뚝한 얼굴도 기억난다.
전당포는 일종의 사금융업이다. 전당포 영업주가 일상용품 등을 담보로 잡고 금전을 빌려주는 영업이다. 이런 담보제도를 질권이라 한다.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물품을 전당포에 맡겨 일상생활을 대단히 불편하게 해서 이른 시일 안에 빚을 갚도록 유도한다. 전당포와 같은 사금융업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달해온 제도다. 근대적 전당포는 조선 후기 개항과 더불어 발달했다. 금융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서민들의 금융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질권과 같은 담보제도를 “근로인민대중에 대한 자본가들의 착취를 실현시켜주는 반동적이고 반인민적인 수단”으로 인식한다. 북한의 민법 등에는 남한의 민법과 달리 질권과 같은 담보물권에 대한 규정이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인류의 발전과 더불어 조금씩 발전해온 사금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주민들이 생활상 편의를 위해 일정한 물건을 맡기고 돈을 대여받는 전당포를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북한도 인정했다. 이에 북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전당포 영업을 허용해왔다.
북한은 2010년 이후 여러 시장경제적 경제개혁 조치를 시행해왔다. 이전에는 중앙의 계획에 따라 원료를 구입하고 물량을 생산해서 중앙이 결정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제 구조였는데, 기업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생산량과 판매 단가를 결정하고 원료를 계약에 따라 구입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간 것이다. 이런 독립적 기업 활동이 허용됨에 따라 기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도 각자가 조달한다. 최근 북한 경제개혁 조치의 특징 중 하나는 정책적으로 결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법적 뒷받침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2014년 개정된 북한의 기업소법과 농장법은 기업이나 농장이 주민들로부터 가지고 있는 여유 자금을 받아 기업과 농장의 경영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바야흐로 본격적 사금융이 제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의 발전을 위해 담보제도의 발전은 신용이 부족한 사회에선 필수적이다. 북한은 비록 외국과의 사업을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2010년 이후 이미 담보물권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논문들을 북한의 정치법률연구 등과 같은 간행물을 통해 발표해왔다. 통상 담보권제도는 동산을 대상으로 하는 질권과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는 저당권으로 나눌 수 있다. 질권의 대상인 동산의 가치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규모 금융에 적합할 뿐이다. 비교적 대규모 자금의 융통을 위해서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는 저당권제도가 발전되어야 한다. 북한의 저당권제도는 라선경제무역지대나 개성공단과 같은 북한의 경제특구 지역에만 존재했다. 북한에서는 특구 지역 외에서는 처분 가능한 토지 이용권이 설정되지 않고 있으므로 당연히 특구 지역 외에서 부동산 저당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활동이나 가계 활동에 필요한 상당한 규모의 자금 융통을 위해선 전당포를 넘어서 부동산 저당권제도의 발전이 불가피하다.
나아가 채무가 변제되지 않아 저당권을 실행해서 금전을 회수하는 방법도 발전해야 한다. 경매와 같은 국가에 의한 저당권 실행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경우 해당 부동산을 채권자가 빼앗는 식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채권자가 부당한 이익을 착취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법원의 경매시스템이 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개성공단에서도 개성공업지구 관리기관이 저당권 경매를 담당했다. 2014년 개정된 ‘라선경제무역지대 부동산규정’도 저당권 경매를 재판소가 담당하도록 했다.
사금융의 필요성과 현실적 발전에도 담보제도의 발전이 병행되지 않으면, 빚을 받아내기 위한 폭력 등의 비정상적 상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1990년대의 러시아의 마피아경제 등에서 본 바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개혁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오랫동안 국제사회가 북한에 촉구해왔던 바다. 북한의 경제개혁을 촉진하고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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