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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9 18:26 수정 : 2019.12.10 09:41

양난주 ㅣ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오랫동안 돌봄을 책임져왔다. 정부는 보살필 가족이 없는 소수만을 책임졌다. 가족 안의 돌봄은 물론, 가족 바깥의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돌봄의 사회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돌봄이 가족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 5살까지의 아동은 누구나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65살 이상 노인이고 요양 필요가 인정되면 누구나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모든 등록장애인은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월 최대 480시간까지 필요한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영유아 보육, 노인장기요양보험, 장애인 활동 지원 등, 이렇게 명칭은 달라도 모두 공공재원으로 생산되는 사회화된 돌봄서비스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우리 사회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 누구나에게 보편적 돌봄을 공적으로 제공하여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방향을 세운 것이다. 물론 이들 제도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현재 돌봄서비스는 양과 질에서 적지 않은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돌봄이 사회권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 사회가 돌봄의 가족책임주의라는 오랜 관습적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돌봄을 가족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가족은 구조적으로 돌봄 책임을 전담할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생활을 같이하는 가구원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90년 평균 가구원 수는 3.8명이었는데 2017년에는 2.5명으로 줄었다. 이후 2045년에는 2.1명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30년 전 9%에 불과했던 1인가구는 현재 29%로 늘었고, 30년 후엔 40% 가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가족 안의 누구에게 평생 돌봄을 전담하라고 할 것인가?

현재 대학진학률은 70%에 이르고 여학생의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7%포인트 정도 더 높다. 진학에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구직과 사회 진출도 성별로 구분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묵살하고 전통적 성역할 규범을 강요하는 순간, 청년이 결혼도 가족도 자녀 출산도 원치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복지국가 연구로 유명한 덴마크의 사회학자 에스핑 안데르센은 20년 전에 이미 현대 복지국가들에 가족주의를 장려하지 말라며 “가정주부와 전업 어머니를 활용하려 들면 들수록 미시 수준과 거시 수준에서 복지가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시 수준에서는 가족 형성과 노동 공급에 저해가 되며 거시 수준에서는 인적 자본의 낭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여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지 않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돌봄서비스가 외면당하고 가족이 돌봄을 도맡는 경우도 생긴다. 돌봄서비스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다.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보육·요양 서비스라면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직접 돌봄을 맡는 가족이 나온다. 또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제공되는 돌봄서비스가 필요에 비해 부족한 경우에도 가족이 직접 나서게 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게 되는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가족에 의한 돌봄이 점점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추가로 필요한 두어시간쯤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쉽게 가족들이 병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돌봄을 도맡아야 할 경우 선택의 기로에 선 가족들이 돌봄을 외면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수 있다. 더 많은 가족이 더 많은 돌봄에 기꺼이 쉽게 참여하려면 믿을 수 있는 공적 돌봄서비스가 제대로 공급되어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돌봄사회권은 돌봄의 제도화, 서비스가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돌봄이 인정되고 돌봄 역량이 강화되는 것을 말한다. 돌봄은 안전하고 존엄한 삶을 만드는 일이다. 인간의 삶에서 돌봄과 노동은 선후를 가리기 어렵다. 돌봄이 노동과 함께 자율적인 삶의 일부로 수행되게 하려면 돌봄을 분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돌봄 수행이 분배되고, 가족과 사회에서 돌봄 책임이 분배되며, 개인의 생활시간에서 노동과 돌봄이 조화를 이룰 때 돌봄은 사회권으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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