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22 18:03 수정 : 2019.12.23 12:21

전상진ㅣ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위르겐은 키가 2미터다. 알고 지낸 지 30년에 가깝고, 사는 곳이 멀어 자주 보지 못한다. 그래도 해마다 꼭 연락하고 독일에 가게 되면 그 집에서 며칠 지낸다. 아무런 부담 없이 숙박할 곳이 독일에 있어 든든하지만, 예전에 받았던 도움에 늘 감사하다. 외환위기는 우리 가족에게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쳤다. 바로 그때 위르겐과 그의 가족이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가령 탁아소 비용을 대주었고 위르겐이 다니던 회사에 짭짤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위르겐은 여전히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 본인이 원한다면 그곳에서 정년(67살)까지 일하겠지. 그러면 4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한 격이다. 지금껏 30년 정도를 매일 7시 출근하여 3시 퇴근. 당연히 드는 생각, 지겹겠다. 본인도 생각이 시끄러운 모양이다. 최근 듣기로, 정년 전에 은퇴해 역사를 공부하고 싶단다. 다른 목적 없이 그냥 ‘공부를 위한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다는 거다.

궁금해서 자료를 뒤져보니 독일에 위르겐과 비슷한 사람이 적지 않다. ‘시니어를 위한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평생교육기관이나 대학이 적지 않고, 한 통계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약 66만명의 시니어 학생(50살 이상)이 있다. 절대다수의 시니어 학생은 평생교육기관을 이용한다. 위르겐이 원하는 건 ‘본격’ 학술 과정이다. 대학의 정식 학생(시니어 학위 과정)으로 등록해서 30살 이상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학위를 취득하겠다는 거다.

어찌 보면 시니어 대학생이 많다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게다. 나이가 많음에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학이 등록금이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세대전쟁론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탐욕스러운 노인들이 청년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설파하는 세대전쟁론자의 구미에 딱 맞는 먹잇감이다. 그래서 한 신문은 “강의실의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세대전쟁론자들에 따르면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세대갈등은 세가지 점에서 문제다.

첫째, 세금 낭비다. 청년들의 대학 교육에 세금을 투자하는 건 남는 장사다. 졸업 후에 본격적인 생산활동에 참여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들은 다르다. 졸업 후에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니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며 기껏 자아를 실현하거나 스스로 만족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교육 투자가 사회로 다시 환수될 수 없기에 그것은 세금 낭비일 뿐이다.

둘째, ‘적절한’ 대학생에게 돌아갈 몫이 삭감된다. 국가가 대학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늙은 대학생이 늘어날수록 젊은 대학생의 몫이 줄어든다. 고령 대학생의 증가에 맞춰 교육 투자를 늘릴 수 있다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국가 재정이 그리 풍족하지 않기에 청년 몫이 줄어든다.

셋째, 강의 품질이 저하된다. 시니어 대학생은 강의실의 맨 앞줄을 점령하고, 자신의 지식이 마땅히 교수와 동급이라 생각하면서 전문가의 권위를 무시함은 물론이고 젊은 동료들을 얕잡아보면서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자신의 ‘찬란한’ 인생 경험에 기댄 주장을 ‘발사’한다. 그렇게 젊은 대학생의 참여와 학습 기회가 줄어들고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수업 분위기가 망가진다.

세대전쟁론자들의 우려가 완전히 허황되지는 않다. 예전보다 적극적인 고령자가 많아지고 기대여명이 지속적으로 연장되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발을 들였다. 그에 대한 준비는커녕 준비가 무엇인지도 불명확하기에 크게 불안하다. 불안은 현실의 특정 단면을 키워 괴물로 만든다. 세대전쟁론자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려는 좋은 뜻에서 출발했을 수 있지만 불안의 괴물에 포획되었다. 앞에서 읊은 주장에서도 그런 면모가 보인다. 주장의 근거가 현실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한 ‘과장’이기 때문이다. 세금 낭비와 젊은 대학생의 몫을 걱정할 정도로 고령 대학생이 많지 않다. 강의 분위기를 해치는 시니어 대학생이 없지 않겠지만 예외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그런 학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위르겐은 그런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부서진’ 독일어를 남발하는 나와 대화할 수 없을 테니까. 대화하고 협력하는 재능을 지닌 위르겐의 꿈을 그래서 나는 적극 응원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