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06 19:01 수정 : 2020.01.07 02:38

양난주 ㅣ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밑 언론보도에 “현금 복지”라는 말이 자주 나타났다. 앞에는 “무분별한”, 뒤로는 “살포”, “끝판왕”, “퍼붓기”라는 낱말을 데리고 등장했다. 얼핏 듣기에도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지를 가리키면서 이게 문제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하게 던졌다. 현금 복지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사회복지학계에서 쓰는 용어로 굳이 바꾸면 가장 가까운 게 현금 급여다. 공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경우는 최저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빈곤상태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위험에 의한 소득 상실을 지원하는 경우로 나뉜다. 이러한 경우 현금 급여의 목적은 소득보장이다.

사회복지를 좀 안다면 우리나라의 소득보장성 현금 급여에 ‘퍼붓는다’는 수식어를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빈곤층에게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자는 전체 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하고, 노후소득보장인 국민연금 수급자는 약 380만명으로 65살 이상 노인 인구의 절반에 그친다. 빈곤층이나 노인 인구 규모를 생각해보면 받는 대상이 상당히 적다. 지급액수는 넉넉한가? 1인가구가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는 52만원을 넘지 않는다. 연금이야 납부액이나 기간에 따라 받는 몫이 다르다는 걸 고려해도 20년 이상 가입한 노령연금 수급자의 평균 연금액이 100만원을 넘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적정한 생활보장에는 모자라는 액수다. 그런데도 왜 현금 복지 비판이 거세지는 것일까? 기사를 검색해보면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는 공통점만 빼고는 ‘현금 복지’가 가리키는 것도 제각각, 비판과 우려도 제각각이다.

먼저, 만 7살 미만 아동 전체가 받게 되는 아동수당과 노인 70%가 받는 기초연금을 두고 재정부담을 우려하는 비판이 있다. 대상 넓히는 것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이 입장에서 복지는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고작 30만명 남짓 태어나는 출생아에 대해 아동수당이라는 사회적 지원이 그렇게 낭비적인가? 아동 가구로의 수평적 재분배는 의미가 없는가? 아동수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미국과 멕시코만 빼고 다 시행한다. 아동수당만큼이나 널리 시행되는 기초연금을 반대하려면 부동의 세계 1위인 노인빈곤율 47%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답을 갖고 와야 한다. 당장 현세대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강화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요원하다.

두번째 현금복지 비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공로수당, 출산장려금, 청년수당,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목적도, 급여 성격도 모두 다르다. 이 중에는 중앙정부의 소득보장제도와 겹치는 프로그램도 있고, 중앙정부에서 하고 있지 않기에 선도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도 있다. 이 둘은 구분해야 한다. 이미 중앙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유사한 급여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중앙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대응과 실험마저 비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지방자치단체의 ‘현금 복지’ 확대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보장에서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 재정립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현금 급여 본연의 목적은 소득보장에 있다. 생활고로 인한 비극을 보도하고 정부 대책을 촉구하면서 정부의 ‘현금 복지’ 확대를 비판하는 것은 모순된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노동시장에서 소득 상실의 위험으로 실업, 질병, 노령 등을 꼽고 상응하는 사회보장급여를 발전시켰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 구사회 위험(old social risks)에 대한 보장도 덜 발달했다. 불충분한 소득보장제도 위에서 새로운 사회변화에 부응하는 사회서비스 정책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는 더욱 정합적으로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중앙정부, 지방정부에서 형편껏 확대해온 각종 사회복지급여의 목적이 소득보장인지 주거, 교육, 의료, 돌봄, 상담 등 사회서비스 보장인지가 우선 구분되어야 한다. 소득 상실에는 현금 급여 확대로 대응하고, 주거와 교육, 의료와 돌봄의 필요에 대해서는 각 필요에 부응하는 사회서비스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의 균형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켜야 하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현금 복지”라는 탐탁지 않은 조어를 앞세운 비판은 전형적인 복지축소론과 다르지 않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