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5 21:39
수정 : 2006.06.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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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정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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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지금 대학가에서는 졸업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여대생들은 맘껏 멋을 내면서 그 한 장의 사진에 인생을 걸자는 사진기획사의 유혹을 자신의 결정인 양 이것저것 준비한다. 그런데 개성과 다양성을 주장하는 그녀들이 너무 비슷하게 보인다. 둥글게 웨이브를 넣거나 긴 생머리, 졸업용 메이크업, 흑백 대비 스커트, 하이힐 등, 아마 사진기획사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가장 날씬하게 보인다는 에스(S)라인 포즈, 도발적인 눈빛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날 필자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 남성잡지의 여성 상품화와 남성들의 욕망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었다. 파워포인트에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도발적인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 연예인 사진들이 요즘 매일 보는 졸업사진 촬영 포즈와 어쩜 그리도 비슷할까? 토론을 하는 학생들은 그 사실을 알기는 할까? ‘수업 따로’ ‘일상 따로’ 그렇게 사는 것일까? 행위 하나하나의 의미를 묻기에는 너무도 바쁜 일상생활에서 그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진촬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날 수업게시판에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한 장의 사진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는 학생부터 머리, 화장을 위한 돈과 시간 투자로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어 찍었다는 학생, 좀 다르게 찍고 싶어 청바지를 입었지만 주변의 친구들과 사진 기사들의 만류에 저항하기 힘들었다는 학생들까지, 다양한 경험들이 올라왔다.
물론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행위’를 위해 한 장의 사진에 의미를 두는 일이 비단 이뿐이겠는가? 결혼사진에서부터 귀하게 얻은 아이들의 돌사진까지, 이벤트사의 거창한 기획의도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은 별 뾰족한 생각이 없다. 혹 의문이 드는 듯하다가도 정말 ‘인생에 한 번’이라는 의미체계를 그냥 그렇게 따른다. 필자는 굳이 ‘인생에 한 번’이라는 그들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딴죽을 걸고 싶지는 않다. ‘대학생들의 과한 멋내기(?) 취미를 건전하지 못한 소비행태로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필자의 관심은 다른 쪽에 있다.
‘한 장의 사진에 인생이 달려 있다’는 광고 카피는 과연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누가 이것을 듣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어떤’ 사진에 ‘어떤’ 인생이 걸려 있는가? 이 문제를 특정 대학, 특정 학생들의 경험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여성 몸 만들기-여성되기’는 여전히 높은 구독률을 자랑하는 남·여성 잡지의 현재적 욕망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의 주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왔더라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지금, 여자 대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영어실력과 함께 ‘여성적인 것’ 그리고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여성적인 몸(과 규범)이다. 남성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영역을 여성들이 보완해야 한다는 ‘조화 담론’들은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말과 함께 이러한 요구를 더욱 지지한다. 따라서 ‘여성적이지 않은 여성’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누구 말대로 이 여성들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적인 몸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것을 보는 특정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배질서에 순종하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 사랑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여성과 남성에게 달리 요구되는 획일적인 미의 생산과 일상적 실천을 자연스럽게 보며, 그것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여성들을 높게 평가하여 계속적으로 이러한 실천을 하게 하는 이 사회의 거대한 힘에 다시 한 번 존경(?)을 표한다.
변혜정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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