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1 17:11
수정 : 2007.01.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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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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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요즘 착한 외모, 착한 가격 등 단어 앞에 ‘착한’을 붙이는 게 유행이다. 특히 외모에 ‘착하다’는 말을 붙일 때 나는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외모조차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건, 뭐든지 잘난 사람만 발붙이고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에서 비롯된 현상일 것이다. 가난해도, 공부를 못해도,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지 못해도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착한 외모’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한 인간이 겪는 고난의 과정을 코믹하고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뚱뚱한 외모로 인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갖은 비하와 멸시를 당한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자신의 인격과 감정까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그녀를 절망하게 했고 결국 목숨을 건 전신성형을 감행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신성형을 통해 변신에 성공한 주인공은 그 대가로 도덕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게 되고 미녀 가수의 립싱크 대신 노래를 불러주는 ‘얼굴 없는 가수’ 신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도 내게 되었지만 성형 사실을 숨기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잃지 않으려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은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의 존재조차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극에 달한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의 첫 번째 콘서트에서 대중 앞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울먹이며 고백한다.
내 가슴이 먹먹해졌던 건 주인공이 성형수술을 한 뒤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을 털어놓는 시점에서 카메라가 주인공과 관객석에 앉아 있는 10대 소녀들의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관객 속 교복을 입은 한 10대 소녀의 물기 어린 눈에는 주인공이 겪었던 자기 분열과 혼란,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는 그 눈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느꼈을 실존적 기쁨과 좌절, 그리고 외로움을 읽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영화 속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다이어트의 성(性)정치>에서 여성학자 한설아는 반복적인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몸무게가 가장 적게 나갔던 시기의 자신의 모습을 이상적인 자기 모습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그 짧은 기간 동안의 자신이 ‘진정한 자기’이며 그 이외의 시기의 모습은 ‘가짜 자기’로 인식한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다. 행복해지고자 자신의 일부를 가짜 자기로 규정하고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처한 딜레마, 그것은 외모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
성형 사실을 부정하는 연예인들, 성형 수술 후에 예전 사진들을 모두 없애거나 숨겨야 하는 사람들은 비웃음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근본적인 잘못은 외모에 대한 평가로 인사를 건네는 관습이 일상화되어 있고, 예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에 있다. ‘착하지 않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고뇌와 아픔에 귀를 기울이기, 그것은 외모를 기준으로 인간의 가치를 등급화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자기 부정의 고통을 심어주는 못된 사회, 그렇게 깊이 병들어 있는 사회를 치유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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